전라북도/전주시

전주...국립전주박물관

임병기(선과) 2016. 11. 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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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를 여러번 들렸음에도 국립전주박물관은 처음으로 인연지었다.

옥외전시장에 몇몇 석등부재와 석불입상을 뵙고 실내 불교미술관을 들렸다.

 

 

익산 미륵사지 석등. 화사석과 옥개석 부재.

 

 

익산 미륵사지 석등.

옥개석과 화사석만 본디 부재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등

 

 

익산 제석사지 석등 옥개석

팔각형 옥개석 윗면의 두툼한 연꽃무늬가 백제 기와의 연꽃무늬와 같은 것으로 보아, 제석사 창건 혹은 중창 때인 7세기 전반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성리 미륵불입상

정읍 무성리에서 출토된 석불로 손에 꽃을 쥐고 있어 미륵불로 보인다.

 

 

대좌

 

 

 

박물관 실내 불교전시관

 

 

금동불입상.10세기초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견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 갖춤

마한의 왕궁이 있던 자리로 알려진 터에 있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을 보수하기 위해, 1965년 해체하면서 탑을 받치고 있던 기단부와 1층 지붕돌 윗면에서 발견된 유물들이다. 발견된 유물들은 백제에서 고려에 이르는 여러시기의 것이다.

 

기단부 윗면에 品자형으로 뚫린 3개의 구멍 중 동쪽에서는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는 청동여래입상 1구와 불교 의식 때 흔들어 소리를 내던 청동요령 1개가 나왔고, 북쪽구멍에서는 향류가, 또 다른 구멍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 1층 지붕돌 윗면 중앙에 뚫려있는 2개의 구멍에서는 각각 연꽃 봉오리모양의 마개가 덮혀있는 녹색의 유리사리병과 금강경의 내용을 19장의 금판에 새긴 다음 접어서 2개의 금줄로 묶은 순금금강경판이 있었다.

 

이 유물들은 모두 2중으로 된 상자(합)안에 안전하게 들어 있었다. 바깥쪽의 외합은 단순히 내합과 유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으로 장식도 없고 칠도 벗겨져 있었다. 녹색의 사리병이 들어 있었던 내합은 뚜껑 윗면에 반쯤 핀 연꽃 봉오리와 주변에는 구슬무늬를 새겨 넣었고, 금강경판이 들어있던 내합은 뚜껑 윗면에 손잡이로 금고리를 달고 국화 문양을 새긴 것으로 모두 도금 상태가 완전하였다.

 

 

(전)낙수정 출토 범종

1999년 7월 다카하라 히미꼬라는 여인이 일본 후쿠오카현청교육위원회를 방문하여 한국 종 1구를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위원회는 여사에게 원 소유국의 문화기관에 기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을 하였고, 고심 끝에 여사는 같은 해 10월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기증할 것을 약속했다. 같은 해 11월 5일 동종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고향을 떠난 뒤 실로 73년 만에 그리운 고국 땅을 밟은 것이었다. 이 동종은 2001년 9월 21일 보물 제1325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국립전주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이 동종이 국립전주박물관의 소장품이 된 이유는 일제강점기 3대 조선총독인 사이또 마코토가 1926년 일본 수성원에 동종을 기증하면서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이또의 편지에 따르면 동종은 당시 전주면에 살던 박모가 자신 소유 낙수정(樂壽亭) 수리 시 땅 속에서 발견한 것으로써, 1916년 경성에서 열린 공진회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동종의 원소재지가 전주였던 것이다. 

 

한편 동종이 발견된 곳에서 1909년에 '開元寺'(개원사)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동종은 전주 개원사라는 절에 걸려있던 종으로 어느 때인지 모르지만 종을 매다는 부분이 깨어지자 땅속에 묻혔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개원사는 폐사되고 조선시대 낙수정이라는 정자가 들어섰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 낙수정 동종은 통일신라 동종을 연상시키면서도 고려 초 동종의 세부 표현과 유사한 것으로 미루어 10세기 중엽에서 11세기 전반에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이 동종과 흡사한 종이 일본 원청사圓淸寺에도 있다. 이 두 종은 크기는 물론이고 넝쿨무늬·비천 등의 모습까지도 유사하여 같은 장인이 동일한 문양판을 사용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전)낙수정 출토 범종

 

 

 

 

부안 남포리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범종.

 

 

쇠북.화엄사출토

 쇠북은 뒷면은 모두 뚫어 징같이 앞면만 소리를 내도록 한 구조다.
앞면을 둥그렇게 3개의 구획을 하여, 한 가운데인 당좌 부분에 8개의 연꽃잎이 활짝 핀 연자를 돋을새김하고, 그 다음구역에 5개의 연잎을. 그 다음 맨 가장자리에 덩굴무늬를 역시 돋을새김 하여 놓았다.옆면 좌우 양쪽 약간 위쪽에 각각 1개씩 모두 2개의 고리기둥을 붙이고 구멍을 뚫어 고리를 달아놓았다.


옆면 가운데와 양쪽 가에 3줄의 태를 두르고, 명문을 새겨놓았다.
‘乙酉五月祝聖願以全州華嚴寺半子棟梁道人孝章同年九月十日造大匠大德重三十斤’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을유년에 전주 화엄사에서 대덕이라는 장인이 만든 무개 삼십 근의 쇠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원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사리갖춤.

 

 

 2016.10.20

 

***박물관 홈페이지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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