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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청송군

청송...척화비.객사.찬경루

by 임병기(선과) 2015.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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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성당.

청송척화비 사진 촬영을 위해 들렸지만 오리무중이었다

수녀님 께서 밝지 않은 표정으로 소헌공원으로 옮겼다고 말씀하시고는 총총걸음으로 성당안으로 들어가신다.



소헌공원.

우리들에게 귀에 익지 않은가?

그렇다. 세종대왕의 왕후 청송 심씨를 말한다.

찬경루,청송객사,비림이 있는 이곳을 소헌공원으로 명명하여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비림



청송성당에 있었던 척화비

소헌공원으로 옮겼다. 개인적으로는 옳은 결정으로 판단되지만 수녀님의 눈빛이 계속 떠오른다.



부사 남희중(1862.5~1863.7) 선정비

머릿돌의 문양이 특이하다



화병(보병)에서 꽃이 세갈래로 피어 있다



운봉관

세종10년(1428) 군수 하담河擔이 찬경루와 함께 건축한 객사이다. 송시열의 중수기문에 의하면 선조때(1600년경) 한차례 중건한 바 있으며 숙종 43년(1717)부사 성환,  순조 12년(1812) 부사 강휘옥, 고종 8년(1871) 부사 윤현기가 각각 중수하였다. 운봉관은는 원래 중당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양익사가 배치되어 있는 건물이었으나 한일합방후 1918년경 중당과 서익사가 없어지고 동익사에 현판을 달아 보존하고 있었으며, 2008년 복원하였다.



중당




찬경루讚慶樓

세종 10년(1428년)에 군수 하담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소헌왕후의 8왕자가 어머니를 위해 각 2칸씩 건축하였다고 전하며 화재로 인하여 1688년에 중수하였다. 정면4칸, 측면4칸의 2층누각이다. 맞은편 보광산에 있는 심홍부(청송심씨 시조) 묘소의 재각이며 장마철 용전천의 범람으로 묘소로 갈 수 없을 때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찬경루는 군수 하담의 청을 받은 관찰사 홍여방이 순시때 지은 것으로 누각에 올라 심씨시조묘를 보니 소헌왕후를 배출 한 경사를 찬미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송백강릉(松栢岡陵)’이라 쓴 현판은 안평대군이 11살 때 쓴 친필이었으나 찬경루가 소실될 때 함께 소실되어 명필가인 한규희가 안평대군의 필체를 모방하여 쓴 글로 전한다.


문득 예전에 다녀온 보광사 글이 떠올라 가져온다.


201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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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로 공사로 네비도 무용지물인 산길끝 옛날과 오늘이 어울렁 더울렁 어울리는 보광사의 한 낮,  낯선 객의 방문에 요란하게 짖던 멍보살도 삼배하는 나를 보고 화답하듯 소리를 멈춘다. 허물어진 채 서있는 요사와 작은 산골절집에서도 위풍당당한 만세루, 객에게 손길을 내미는 극락전 중정의 아담한 석탑 한 기, 그 분위기 속으로 동화되고 싶었다. 

 

신라 문무왕 12(672)년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세종의 비 소헌왕후 심씨가 보광사 뒷산 청송 심씨 시조의 묘를 제향하기 위해 추모재와 만세루를 짓고 원당 사찰로 삼았다고 한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슬하에는 문종(文宗), 수양(세조(世祖)), 안평, 임영, 광평, 금성, 평원, 영응대군의 8남과 정소, 정의공주의 2녀를 두었다. 수많은 치적을 이룬 성군(聖君)으로 일컫는 세종과는 달리 왕비 소헌왕후는 영의정을 지낸 부친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이 태종에 의해 사사(賜死)되는 비운을 겪고, 세종 14년[1432년]에야 왕비로 개봉(改封)된다. 또한 자신 두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등 다소 불우한 일생을 마쳤다. "

 

 

만세루. 사전 준비 없이 들린 까닭에 많은 사찰 루대처럼 당연히 부처의 뜻을 만세에 밝힌다는 뜻의 사찰 누문으로 생각했으며 작은 절집에서 너무 크게 배치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나 보광사 만세루는 사찰 행사등의 본래 목적보다. 1428년 나라에서 청송 부사 하담에게 명하여 건립한 청송 심씨 시조묘의  문중제각으로 시조묘소 향사시 우천일 경우 이곳에서 봉전하였다고 전한다

 

결코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가슴속 이야기도 있지만 진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겠다. 

 

가까운 청송 시내도 위 인물이 건립한 찬경루가 있으니 우리님들 답사시에 들려보길 바란다. "찬경루기(讚慶樓記)에 의하면 "이 누각에서 보광산(普光山)에 있는 소헌왕후(昭憲王后)(1395∼1446)의 시조묘(始祖墓)를 바라보며 우러러 찬미한다는 뜻에서 찬경루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정면 4칸, 측면 4칸의 중층(重層)집으로 '송백강릉(松栢岡陵)'이란 현판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글씨이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왕자 8형제가 외가인 청송심씨(靑松沈氏) 시조를 위해 지은 집이다 한다."

 

 

보광사 주불전. 원당사찰 답게 극락전이다. 세종 10년(1428)에 지었다고 추정하지만 보수공사 중 만력(萬曆) 43년 12월 1일자의 상량문이 나왔으므로 1615년 건축으로 여겨진다. 막돌허튼층 기단위에 3칸* 3칸 규모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덤벙주초, 두리기둥, 다포계, 겹처마, 어칸에는 팔각 불밝기창, 양협칸에는 띠살문 창을 두어 일반 민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어칸 팔각 불발기창은 흔치 않으며 산청 율곡사 대웅전에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된 것으로 안다.

 

 

어칸 창살

 

 

 극락전 후벽. 판문과 중앙 출입문이 보인다.

 

 

극락전 삼존불

 

 

영산회상도 탱화 상단에 탱화조성 복장이  걸려 있다.

 

 

우물천장

 

 

추모재 현판이 걸린 퇴락한 요사.

 

글쎄요?

 

 

언제부터 계셨나요? 스쳐간 인연이 많았을텐데. 두 기의 조합인지 5층탑의 4층 몸돌과 옥개석, 5층 몸돌이 멸실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옥개받침은 3개, 지대석에 연꽃이 피어 있다

 

 

아담사이즈 석탑 옥개석 상부에 찰주공이 보여 까치발로 찰칵!

 

 

긴 세월 대하소설로도 모자라겠지요?

 

우리는 앎에 허기지는데...

 

 

요즘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  절집 금당이 고향집 안방이련가? 

 

200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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