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성당. 청송척화비 사진 촬영을 위해 들렸지만 오리무중이었다 수녀님 께서 밝지 않은 표정으로 소헌공원으로 옮겼다고 말씀하시고는 총총걸음으로 성당안으로 들어가신다. 소헌공원. 우리들에게 귀에 익지 않은가? 그렇다. 세종대왕의 왕후 청송 심씨를 말한다. 찬경루,청송객사,비림이 있는 이곳을 소헌공원으로 명명하여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비림 청송성당에 있었던 척화비 소헌공원으로 옮겼다. 개인적으로는 옳은 결정으로 판단되지만 수녀님의 눈빛이 계속 떠오른다. 부사 남희중(1862.5~1863.7) 선정비 머릿돌의 문양이 특이하다 화병(보병)에서 꽃이 세갈래로 피어 있다 운봉관 세종10년(1428) 군수 하담河擔이 찬경루와 함께 건축한 객사이다. 송시열의 중수기문에 의하면 선조때(1600년경) 한차례 중건한 바 있으며 숙종 43년(1717)부사 성환, 순조 12년(1812) 부사 강휘옥, 고종 8년(1871) 부사 윤현기가 각각 중수하였다. 운봉관은는 원래 중당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양익사가 배치되어 있는 건물이었으나 한일합방후 1918년경 중당과 서익사가 없어지고 동익사에 현판을 달아 보존하고 있었으며, 2008년 복원하였다. 중당 찬경루讚慶樓 세종 10년(1428년)에 군수 하담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소헌왕후의 8왕자가 어머니를 위해 각 2칸씩 건축하였다고 전하며 화재로 인하여 1688년에 중수하였다. 정면4칸, 측면4칸의 2층누각이다. 맞은편 보광산에 있는 심홍부(청송심씨 시조) 묘소의 재각이며 장마철 용전천의 범람으로 묘소로 갈 수 없을 때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찬경루는 군수 하담의 청을 받은 관찰사 홍여방이 순시때 지은 것으로 누각에 올라 심씨시조묘를 보니 소헌왕후를 배출 한 경사를 찬미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송백강릉(松栢岡陵)’이라 쓴 현판은 안평대군이 11살 때 쓴 친필이었으나 찬경루가 소실될 때 함께 소실되어 명필가인 한규희가 안평대군의 필체를 모방하여 쓴 글로 전한다. 문득 예전에 다녀온 보광사 글이 떠올라 가져온다. 2015.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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