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정확히 1979년 6월 입대전 추억이 있었지요. 그리고 1990년 초. 허리가 아파 경주에서 유명한 침술인을 만나러 가는 길 영지 부처님에게도 침을 놓고 싶었습니다.
2007년 12월 우리카페 회원들과 토비스 콘도에서 1박하면서 새벽에 뵈었던 님 그게 마지막이었으니 8년 만에 해후!!
미완성 불? 훼손된 불?
오늘은 까막눈이 개명한 날이었습니다.
엄청 큰 화불 3분 (백제계의 특징중의 하나인가요?) 중대석의 안상, 상촉하관
뭔가 또 있었는데 연식탓으로 돌리면 편안해지는 후안무치가 당당한 나이임다!
2015.07.04 ====================================================================================================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깃들여져 있는 영지는 통일신라 경덕왕대에 불국사를 창건할 당시로 백제의 석공 아사달은 불국사 다보탑을 완성하고 석가탑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다. 남편이 그리워 아내 아사녀는 서라벌로 찾아 왔으나 "탑의 제작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주지의 뜻을 받아 들여 탑의 그림자가 비추일 것이라는 못가에서 혹시나 그 탑의 그림자가 보일까 하여 기다렸다.
남편을 지척에 두고 만나지 못하던 아사녀는 문득 못속에 기묘한 흰탑의 환상을 보고 아사달을 그리며 못속으로 뛰어 들었다. 석가탑을 완성하고 아사녀가 기다리는 영지로 찾아 온 아사달은 그리운 아내의 죽음을 보고 아사녀를 부르며 미친 듯이 못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러 옛 백제 땅에서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이곳에서 기다릴 때 석가탑이 못에 그림자를 비추었다 하여 '그림자 못' 즉 '영지(影池)'라 했다.
슬픈 전설과 함께 영지에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넋이 다시는 이별 없는 사랑으로 고여 있고 지금도 못가의 송림 가운데는 아사달이 아사녀을 위해 만들었다고 전하는 석조여래좌상이 남아 있어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을 기리고 있다.
석불좌상인 이 불상은 이중으로 돌려진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며 거신광의 광배를 하고 있다. 아쉽게도 광배 일부 및 머리부분은 마멸과 파손이 심한 편이어서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법의는 편단우견을 하고 있으며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나타내고 있다.
여래좌상은 삼단의 팔각대좌위에 거신광의 광배를 모두 갖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석굴암 본존불상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한 불상으로, 적당한 양감이 있으면서 지나치지 않고 탄력감 넘치는 모습으로 8세기후반 혹은 9세기의 예처럼 느슨해지거나 혹은 뭉특하고 경직된 느낌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제작시기를 대체적으로 8세기말경으로 추정된다.
누구를 애타게 기다려 보셨나요? 그리워는 해보셨나요? 그리움, 기다림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2006.12.09 ***마지막 문장을 제외하고는 '신라문화원'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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