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양군

함양...이은리 석불입상

임병기(선과) 2014. 12. 1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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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숲이 푸를 때 찾아왔던 상림이었다.

겨울

해질녘  분위기도 괘않네...

 

연밭

박물관

다음에는 익숙해질려나?

 

이은리 석불입상

예전에는

척화비 옆에 있지 않았나?

 

박물관으로 갔으면 좋으련만

 

 

 

 

 

 

 

 

2014.11.22

 

 

 

함양 상림, 우리국민들이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관심 .열정이 미미한 90년초에 답사하였으니 실로 15년만에 다시 찾았다, 나름대로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했는네 숲, 척화비 석불 외에는 전혀 기억이 없다. 안보면 잊혀진다고? 

상림은 신라 최치원선생이 함양태수 재직시 조성하였다. 고은은 부임하여 함양 중앙을 흐르는 위천의 홍수를 방지목적으로 사람을 동원하여 강물을 돌리고 제방을 축조하여 나무를 심고 보호하면서 대관림으로 불렀다고 한다. 호안림, 방풍림,방사림,비보림 등 다양한 숲 기능을 보여준다. 

 

현재는 중앙이 황폐하여 (上林)과 하림(下林)으로 나뉘어졌다. 상림은 관주도의 숲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숲의 하나이다. 

 

전남 담양에도 관방제림이 있다.관방제림은 1648년 성이성 부사가 해마다 제방을 수축하면서 수해를 방지했고, 또 철종(哲宗) 5년(1854년)에 황종림(黃鐘林) 부사가 국가재정으로 인부 연 3만여명을 동원해서 만든 제방에 조성된 것이므로 주어진 명칭이다.

 

 

함양상림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들로는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개서어나무류가 주를 이루며, 왕머루와 칡 등이 얽히어 마치 계곡의 자연 식생을 연상시킨다.

 

1993년 조사에서 116종류의 식물이 조사되었으며, 현재 20,000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상림의 함화루. 조선시대 함양읍성  남문이었다. 본래의 명칭은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는 뜻으로 망악루(望岳樓)라 하였으나, 이건(移建)되면서 함화루로 고쳤다고 한다.

 

함양읍성에는 동쪽에 제운루(齊雲樓), 서쪽에 청상루(淸商樓), 남쪽에 망악루 등 삼문(三門)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문이었던 이 건물만이 옮겨져 남아 있다. 

 

 

시민들의 쾌적한 휴식공간과 여가 활용의 장으로 자리한 듯한 상림에는 뱀,벌레가 없다고 한다. 그와관련 최고은의 일화가 전해온다.

 

고은선생은 어머님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으로 여기고 어머님의 근심을 자기의 근심으로 삼아 어머니의 뜻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하늘이 낸 효자로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님에 대한 불편은 조금도 없게 해 드릴려고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은 혼자서 바람을 쏘일겸 상림 숲에 산책을 나가서 풀숲에 않아 놀다가 뱀을 보고 깜짝 놀라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숲에서 뱀을 보고 놀란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최치원은 어머니에게 송구함을 금치 못하여 상림 숲으로 달려가서 숲을 향해 '이후로는 상림 숲에는 뱀이나 개미같은 모든 해충은 일체 없어져라. 그리고 다시는 이숲에 들지 말라' 고 주문을 외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최치원의 지극한 효성으로 인한 주문 때문에 모든 해충이 사라지고 모여들지를 못한다고 한다. 

 

 

마을 숲의 본디 기능의 하나인 당신앙의 흔적이 상림에도 보였다.

 

 

이은리 석불. 함양 상림에 위치한 불상은 고려조에 망가사에 봉안되었던 불상으로 추정하며 냇가에 방치된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두 손이 멸실되었으며 거신광배의 광배는 두겹 원을 둘러 안에는 연꽃을 새겼다.

 

 

방방곡곡의 불상처럼 민간 기자 신앙의 흔적이 얼굴에 상처로 남아 있다.

 

소발, 얕은  육계,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어깨는 약화되었으며 법의는 U 자형 통견이다.

 

 

함양 척화비. 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 후  쇄국 의지를 고취목적으로 방방곡곡에 세운 척화비의 하나이다. 

200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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