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양군

함양...오도재 마고 할멈상

임병기(선과) 2013. 7. 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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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사진작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아름다운 길. 오도재悟道재 깨달음의 고개? 이름이 심상치 않다. 영원사에서 수도하던 청매조사가 고개를 오르내리면서 깨달음을 얻은 연유로 오도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오도재는  심심유곡 마천사람들이 함양장을 가든 길, 함양에서 칠선,백무동 계곡, 지리산을 들기 위한 관문이었다. 또한 남해안의 해산물이 내륙지방으로 운송되는 교통의 요지어서 재아래에 역을 두어 인마와 물량을 관장하였다고 한다.

 

 

오도재는 김종직 선생을 비롯해 정여창. 유호인. 서산대사. 청매조사를 비롯 시인 묵객들이 넘나들며 지리산을 노래했다.

 

天王峰...勉庵 崔益鉉

 

乾坤草闢在何年(건곤초벽재하년)  하늘과 땅과 풀이 그 어느 해에 처음 열려서

準備頭流擎彼天(준비도류경피천)  두류산을 준비하여 저 하늘을 떠받치는가.

層崖陰織春無盡(층애음직춘무진)  층계진 언덕 그늘에 봄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에

下界雲蒸晝欲眠(하계운증주욕면)  산 아래 구름 끼니 낮인데도 잠을 자고 싶구나.

瞻依日月頻回首(첨의일월빈회수)  해와 달을 우러르며 고개 돌려 얼굴을 찡그림이여

管轄山河總俯前(관할산하총부전)  산과 물을 관할하니 모두가 내 앞에 엎드리누나.

莫謂尋眞多別路(막위심진다별로)  참 일을 찾고 있는데 어디 다른 길이 있을손가.

發源自有逝斯川(발원자유서사천)  발원하는 데서부터 냇물이 떠나가게 되었으리라.

 

 

오도재 이름을 낳은 영원사 청매조사 부도

 

12각시...청매

 

각비각비각(覺非覺非覺)/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

각무각각각(覺無覺覺覺)/ 깨달은 자체가 깨달음 없이,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니

각각비각각(覺覺非覺覺)/깨달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

기독명진각(豈獨名眞覺) /어찌 홀로 참깨달음이라 이름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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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마천면은 최근 지리산 천왕봉이 한눈에 보이는 지리산조망공원에 지리산 ‘마고할미상’<사진>을 제작 설치했다. 지리산은 신라시대 이래로 조선시대까지 오악으로 여겨져 제사와 숭배의 대상이었던 산으로 보다 구체적인 형상물로 표현되어졌던 것이 지리산 천왕봉 바로 아래에 있었던 성모상이었다. 현재 이 성모상이 어떤 경로를 통해 옮겨졌는지 확인할 수 없으나 현재 산청군 천왕사라는 절에 옮겨져 있다고 한다.

 

지리산의 산신은 노고(老姑), 성모(聖母), 백모(白母)로 불렸으며 마고는 지리산에서 불린 여신은 아니나 우리 민족의 공통된 여신인데 이를 함양군은 지리산 조망공원에 건립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늙은 시어머니’란 뜻의 노고, ‘거룩한 어머니’란 뜻의 성모, ‘하얀 어머니’란 뜻의 백모는 하나의 대상을 각기 달리 표현한 것으로 학계는 주장하고 있다. 늙고 영험한 시어머니나 거룩한 어머니나 하얀 어머니는 영험한 대지의 여신으로 풍요와 자손의 번영을 상징하는 의미를 신화는 담고 있다.

 

현재 마천면 백무동의 어원은 백모(白母·하얀 어머니)에서 유래됐다고 향토사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의미 부여를 떠나 마고할미 조각상 설립 자체만으로도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큰 의미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마고할미상은 지리산의 기운을 총괄 관장하는 여신으로 지리산조망공원의 장승들, 시비 등과 함께 색다른 볼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2009년 4월 경남일보 노상봉 기자.

 

 

 

오도재와 가루지기 타령.

 

 아래 글은 2008년 나의 벽송사 답사기에서 언급했던 가루지기타령의 안태고향이 함양이라는 관련자료 이다..

 

"요즈음 지자체의 전시행정이 난무하고, 돈으로 떡칠하는 소모성 축제와 일과성 감각적인 오락위주 놀이문화가 만연하는 트렌드에서 지리산 자락 소읍 함양군이 변강쇠와 옹녀 부부가 살던 곳이 함양이라고 주장하며 가루지기타령의 안태고향을 입증하려는 노력을 다른 지자체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관련기사를 옮겨온다.

신재효의 여섯 마당 판소리 중 가루지기타령(일명 변강쇠가)은 사설에는 들어있으나 실제 창으로는 전수되지 못하고 구비문학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가루지기타령의 주인공 변강쇠와 옹녀 부부가 살던 곳이 함양이라는 증거를 잡았다는 것이다. 함양군 기획감사실(박영일 실장)은 성두본 변강쇠가를 분석, 지정학적인 위치가 함양군 휴천면과 마천면의 경계인 오도재 일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변강쇠와 옹녀는 개성 청석관에서 만나 도방살이(도회지 삶)를 하게 되며, 옹녀는 소박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 들기름장사 등 행상을 하나, 천하잡놈 변강쇠가 살림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늘 술타령을 하고 싸움질 하고 강간을 일삼아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어렵다.

이에 땅이 순후하고 생리가 좋다는 지리산을 찾아오게 된다. '지리산중을 찾아가니 첩첩한 깊은 골에 빈집 한 채 서 있으되, 임진왜란 8년 동안 어떤 부자가 피난하여 이집을 지었는지 오간팔작 기와집이 다시 사람 살 일 없고 흉가로 비어있어서 누백년 도깨비 동청이요, 묏귀신의 사랑(舍廊)이라'. 변강쇠 부부가 산속의 빈 기와집에 들어가 살게 될 집에 대한 표현이다. 군은 '누백년 도깨비 동청'과 '묏귀신의 사랑'은 다름 아닌 오도재의 산신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산신각은 천수백년 전부터 오도재 정상에 있었던 것으로, 70여 년 전에 허물어져 터만 남아있던 것을 지난해 복원했다.

또 군은 이외에도 변강쇠전의 배경이 함양군이라는 근거로 변강쇠가 나무하러 가면서 '등구 마천 백모촌'의 초군들을 만나게 된다는 내용을 들고 있다. 이들 지역은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되기 전 오늘날 함양군 마천면을 지칭한 것으로 '등구'는 오늘날 함양군 마천면 등구마을 일대를 지칭하고, '마천'은 오늘날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가흥리 군자리 일대를 말하며, '백모촌'은 마천면 백무동의 옛 명칭이라는 것이다.

또 변강쇠가 나무는 하지 않고 나무 대용으로 장승을 뽑게 되는데, 그 장승이 서있던 곳이 '등구마천 가는 길'에 서있던 장승이며 그 장승은 변강쇠에게 불 태워지게 되자 억울한 귀신이 돼 대방전 장승(인간세계의 임금에 해당됨)에 변강쇠의 악행을 고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게 되는데, 성두본 원문에 '소장(小將)은 경상도 함양군에 산로(山路) 지킨 장승'이라고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변강쇠가 불로 땐 그 장승의 신분은 함양군의 산로를 지키는 장승, 즉 함양군의 지리산 가는 길을 지키는 장승임을 밝히고 있다. 이 밖에도 변강쇠전에 등장하는 초군들이 부르는 노래 속에 '저 건너 행화촌'이 나오는데, 오늘날 살구징이라고도 불리는 행화동을 일컫는 것으로 오도재 정상으로부터 600여 m 아래에 실존하는 마을이다. 박 실장은 "변강쇠전은 인문학적으로 소중한 함양군의 지적 재산"이라면서 "앞으로 변강쇠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문화관광, 식료품 관련 사업들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함양군은 지리산조망공원내 성문화공원을 만들어 변강쇠를 테마로 한 장승을 비롯한 성문화 시설물을 선보였다."

201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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