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예산군

예산...옹주태실.척화비. 효제비

임병기(선과) 2010. 8. 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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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 척화비와 옹주태실을 묻기 위해 옆에 위치한 대흥면사무소를 찾아갔더니 동시에 3분이 일어서며 안내를 자청하여 흐뭇하기 그지 없었다. 직급이 높은 분이 면사무소 옆문을 지나 대흥동헌 후원에 위치한 척화비로 안내해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문화재를 다른 장소로 이건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척회비는 동헌 앞 효제비 근처면 될테고, 옹주 태실 역시 동헌에 위치할 문화재는 아니지 않는가?

 

위의 사진은 대흥아문이 아닌 임성아문(任城衙門) 현판이 걸려 있다. 백제 시대 임존성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대흥의 옛지명으로 생각된다.

 

 

상량문에 의하면 대흥동헌은 조선 초인 태종 7년(1407)에 창건되었고, 1703년 중수하였고 1914년에 대흥면사무소로 개조하여 사용되다가 1979년 해체복원 정비되었다. 대흥면 사무소는 동헌 옆에 있다.정면 6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건물로 전퇴를 두었다. 대흥동헌은  예산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유일한 관아건물이라고 한다.

 

 

동헌 후원에 대원군 척화비와 나란히 옹주태실로 옹주는  영조 임금의 옹주로 알려져 있다. 글은 문화재 총람에서 옮겨왔다. "원통형의 돌 중앙에 구멍이 있고 뚜껑으로 덮게 되어 있는 이 태실은, 높이가 60cm, 원주가 91cm로 화강석재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구멍의 깊이는 33cm 원주는 43cm이다.

 

뚜껑은 원주가 85cm로 꼭지 부분은 복발처럼 다듬어 장식해 놓았다. 태실의 전방에는 총고 188cm, 가로 50cm, 비신길이 102cm의 비가 세워져 있으며 방형의 화강석재 기단 위에 비신을 올리고 비신의 상단부에 이수를 모각했으며 이수의 상부에 복발형의 조식이 되어 있다."

 

 

대흥 척화비.시멘트 기단 위에 화강석재로 만든 비신은 상단부가 파손되어 있는 상태이며, 우리 님들에게도 익숙한 문구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세세만년자손 병인작신미립(洋夷侵犯非戰卽和主和賣國歲歲萬年子孫 丙寅作辛未立)”이라는 비문이 각서되어 있다. 


 

미처 사진에 담지 못했지만 대흥면 동헌 앞 효제각에 모셔진 탑이다. 50대들의 초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의좋은 형제(달밤에 볏가리을 서로 옮겨 놓던 글)의 모델인 고려전기의 이성만.이순형제의 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비이다. 사진(최근 모습은 아니다)과 글은 문화재청에서 가져왔다.
 

비는 고려초(高麗初) 효자(孝子)로 이름난 이성만과 이순(李順) 형제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들은 부모가 살아 있을 때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하고, 봄과 가을에는 술과 떡을 하여 부모께 드리고, 친척들과 기쁘게 나누어 먹었으며, 부모가 돌아가시자 형은 아버지 묘를 지키고 동생은 어머니 묘를 3년간 시묘(侍墓)하였다. 또한 형제는 우애(友愛)가 지극하여 아침에는 아우가 형의 집에서, 저녁에는 형이 아우집에서 아침과 저녁을 같이 들었다. 색다른 음식이 있을 때 형제 중 한 사람이 없으면 먹지 않았다 한다.

 

비는 연산군(燕山君) 3년(1497)에 가방교 옆에 세워져 있던 것을 예당(禮堂) 저수지 수몰로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비는 조선(朝鮮) 초기(初期) 양식의 화강암(花崗岩) 비석(碑石)으로 이성만 형제의 갸륵한 행실에 대하여 왕이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고 자자손손(子子孫孫)에게 영원히 모범되게 하라 하였다는 내용의 173자가 기록되어 있다.  

201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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