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청송군

청송...송소 고택

임병기(선과) 2009. 6. 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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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랑마당에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오늘 저녁에 작은 음악회가 있다는 현수막이 보인다. 주중에 고택 체험인지 알 수 없지만 혼자만의 즐거움을 앗아 느긋하게 돌아볼 여유가 사라진다. 소개 글을 송소고택 홈에서 가져왔다.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영조(英祖)때 만석(萬石)의 부(富)를 누린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에 이거하면서 지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1880년경에 건립되었다. 대문은 솟을 대문에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큰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크고 화려한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다. 우측에 작은 사랑이 있고 그 뒤로 안채가 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의 교창을 달았다.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으며,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별당은 2채인데, 하나는 대문채이고 또 하나는 별당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청송 심씨는 조선시대 5백년을 통해 정승이 열 셋, 왕비가 넷, 부마를 넷 씩이나 낳은 사색의 주류인 서인집이다. 고려 때 위위사승을 지낸 심홍부를 시조로 하여 증손인 덕부.원부에서 크게 둘로 갈라졌는데, 이성계의 역성혁명 후 좌의정을 지낸 덕부의 후손이 그 하나요, 새 왕조의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에 들어가 유훈을 지키면서 선훈불두하여 고향에 산 원부의 후손이 또 하나다.


청송 지방에 흩어져 사는 심씨 들이 대개 심원부의 후손이다. 현재 청송에는 심원부의 장증손 심상악씨외 10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데, 덕천 심부자로도 그 명성이 높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심부자의 재력은 9대 2만석으로, 해방 전 일제시대 때도 2만석을 했다고 한다. 조선팔도 어디를 가나 자기 땅이 없는 곳이 없었으며, 구한 말 개화기 때는 화폐의 가치와 변동이 심해 나라에 세금을 종이로 납부하다가 다시 화폐로 납부하기도 하였는데 그때 은화로 납부하라는 지시에 따라 안계(지금의 의성 안계)의 자기 소유 전답을 처리하여 화폐로 바꾸자니 안계 고을에 돈이란 돈은 전부 모여질 정도 였다고 한다. 또 이것을 청송 호박골로 옮기는데 그 행렬이 10리나 뻗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 한밤중 동네 도둑이 든다는 소문을 듣고 집안 식구들은 모두 피신하고 안사랑 마님 혼자서 집을 지키는데 한 밤중에 도적 수 십 명이 몰려 들어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백발의 안방 마님이 나아가 물건을 훔치러 왔지 기물을 왜 부수는가. 내가 문을 열어 줄 터이니 가지고 가고 싶은 대로 가져가라 하며 직접 열쇠를 가지고 광이나 곡간을 열어 주었더니 수십명의 도둑들이 모두 한 짐씩 가지고 갔다고 한다. 그 후 남은 돈으로 이 집을 지었다 하니 그때 돈이 얼마나 많았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솟을 대문

 

 

솟을대문 위 벽사의 상징인 홍살과 화반. 화반의 모습이 독특하다

 

 

헛담. 우리 전통 가옥 배치에서 유교의 남여유별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다.

 

사랑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안채출입이 자유롭도록 하는 배려이다. 

 

 

사랑마당 정원. 너른 사랑마당을 적당이 감싸 아늑함을 주며 잔손질을 하지 않아 자연스럽다.

 

 

사랑채. 기단을 낮게하고 정면 5칸, 축면 2칸, 팔작 지붕으로, 당당한 모습니다.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으며 2칸은 대청이며 문이 달려져 있다. 가운데 칸은 안채와 연결되었고, 두칸은 안채를 향해 안마당과 ㅁ字이며 두칸은 뒤사랑마당에 접해 있다.

 

 

사랑채 툇마루. 대청에도 문을 달아 보이지 않는다.

 

 

사랑채 띠살문 창살.

 

 

작은 사랑채. 대문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문과 어깨를 하고 있다. 사랑채보다 낮게하고 규모도 작지만 맞배지붕 용마루에 살며시 앉은 팔작지붕의 측면이 우아하다.

 

 

작은사랑 중문에서 바라본 안채 

 

 

정면 6칸 측면 3칸이며 사랑채 후면, 작은사랑채, 고방채. 부억과 口字 배치이다. 사랑채처럼 대청에 문을 달았다. 예전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던 듯하다.

 

좌측으로는 부엌을 두고, 방앗간채로 문을 내었다. 우측에는 고방을 두었으며  뒤사랑마당, 별채, 후원으로 출입하도록 문을 달았다.

 

 

퇴주 바깥으로 내민 툇마루가 이채롭다.

 

 

고방

 

 

방앗간채

 

 

별채. 경북 북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채 배치와 흡사하다.

 

 

사랑채 굴뚝

 

 

연기 배출과 화기조정은 물론이고, 집안의 눅눅한 습기 제거, 병충해 접근 방지 등 다양한 용도의 굴뚝이다. 주변의 황토와 지붕을 이고 남은 암키와, 숫키와를 활용하여 멋을 내었다. 옹기로 쌓은 배기통도 눈을 즐겁게 한다.

 

 

꽃담. 송소고택 홈의 글이 재미있다. "꽃담은 주로 해와 달의 음기와 양기를 불어넣어 꽃을 피우고 새를 불러들이며 풍성하게 열려있는 과실을 표현한다. 자연을 주제 삼은 꽃담이 더 정겹게 다가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꽃담의 화려함은 궁궐에서 찾을 수 있다. 임금의 무병장수를 비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의 문자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직선과 곡선을 치밀하게 구성하고 질서 있게 무늬를 배열하여 미감을 높이는가 하면 왕실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으로 위엄을 갖추기도 했다.


또한 질펀하게 표현되었지만 더 살갑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서민들의 담장치레이다. 흙으로 쌓아올린 담장에 깨진 사기그릇 파편과 조각난 기와장을 꾹꾹 눌러 박은 소탈한 치장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하나의 작품이다.


하나의 경계나 단절이 아니라 친숙하고 정감이 느껴지던 자연의 일부였던 꽃담. 콘크리트 숲에 갇혀 살면서 더욱 꽃담의 풍경이 그리워지는 것은........"

 

 송소고택은 하룻밤 묵으면서 고택체험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문화 공연이 있다고 한다.  홈페이지 주소를 가져오니 찹고하길 바란다.( http://www.songso.co.kr/)

 

200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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