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사를 돌아나와 금호읍 오계리 만취당에 도착했다. 답사의 초심자라도 마을 어귀의 푸른 소나무 동수(洞藪)로 인해 쉽게 찾을 수 있는 만취당은 영지사 초입에 위치한 도잠서원에 배향된 지산 조호익 선생의 7세손이며 정조 임금시절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 선생의 고택으로, 만취당은 사랑채의 별호이다.
만취(晩翠)는 선생의 호로 겨울에도 푸른빛이 변하지 않은 소나무를 이른 말로 지조를 상징하며 많은 선비,장군의 별호는 물론이고 정자 이름으로도 즐겨 사용된다. 만취와 걸맞게 오계리 뒷산은 선생이 고택과 함께 조성하였다는 송림이 겨울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고택에 이르면 낮은 담장 너머로 광명헌 편액을 단 새사랑채가 객을 맞이해 주지만 사전 지식 없이 답사하였으면 정자로 착각할 법 하다. 행랑채와 붙은 솟을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가묘, 넓은 사랑 마당, 넌지시 비켜 앉은 사랑채인 만취당이 남향하고 있다.
사랑마당 한켠으로 서향한 초가지붕의 곳간(?), 입구에서 보았던 광명헌으로 통하는 중문, 중사랑채가 사랑채와 맞물려 보이지만 역시 안채와, 안채로 통하는 중문은 가시권 밖으로 우리 전통가옥의 구성인 ㅁ字형의 가옥배치임을 알 수 있다.
만취당
고택의 중심 건물인 큰사랑채인 만취당은 집안의 가장이 거주하는 곳으로, 홑처마,팔작지붕,얕은 기단, 두리기둥,정면 5칸, 측면 2칸을 왼쪽에 4칸 사랑방, 다른 사대부 집안의 6칸 대청과 달리 우물마루의 4칸 대청, 사당으로 통하는 쪽의 2칸 재방인 영모재로 구성되어 있다.
영모재 창호
대청과 사랑방, 재방 사이에는 팔각,사각 불발기창이 고운 창호, 전면에는 툇마루, 측면은 안채로 통하는 중문과 엇물려 배치, 반대측면에는 쪽마루가 있다. 안내문에도 표기했듯이 사랑채에 별도의 재향공간이 존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불천위 제사가 아니고는 대부분 안채의 대청에서 제사를 모신다.
곳간채
작년 가을에 볏집으로 새로 옷을 입힌 곳간채을 바라보고 있는 중에 요란한 개 짓는 소리에 관리인인 듯한 여자분이 안채에서 나오시며, 객을 위한 배려로 소란스러움을 잠 재워 주신다.
중사랑채
사랑채에 물린 중사랑채는 중문, 중사랑방, 특이하게 한칸의 대청이 일자형이며,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으나 격에 맞추어 사랑채 보다 낮으며, 안채와 맞본다.
중사랑채는 사랑채 주인이 되기 전까지 거처하는 공간으로 마루, 기단이 만취당과 차이를 두어 은근히 위계를 강조한 우리네 전통 한옥의 구성과 일치한다.
안채
안마당이 딸린 안채는 낮은 막돌기단, 덤벙주초에, 사랑채의 두리기둥에 대비되는 방형기둥, 홑처마, 두칸의 대청과 두칸의 안방을 정면으로 안방쪽에는 부엌과 고방, 마루에는 방을 이어달아 ㄷ자형 건물이며, 일자형의 중사랑채 때문에 ㅁ자 배치로 여겨진다.
장독대가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안채 뒤뜰에 위치하기 때문인 듯하며, 부엌에는 장독대로 통하는 작은 출입문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어, 안채에서 바깥으로 통하는 출입문은 중사랑채에 달린 중문, 닫혀 있는 사당으로 통하는 또다른 중문과 더불어 세개의 문이 있다.
안채에서 눈여겨 볼 것은 얕은 기단의 검은 흔적으로 예전에 굴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추운 지방에서는 굴뚝이 높으며 남부지방에서는 낮으나, 만취당 안채 기단의 굴뚝은 습기와, 벌레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며,고택 답사시 기단부에 이따금 보이는 정겨운 정경이다.
또한 만취당의 기둥을 잘 살펴보면 기둥 아래부분이 하얗게 보인다. 아마 기둥의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소금을 기둥아래 넣었기 때문이 아닐까?
종손 어르신과의 해후가 없다면 고택 답사는 대부분 여기서 마치게 된다. 정침 동편 불천위 사당, 가묘가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늘 닫힌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취당에서는 새사랑채라는 독특한 가옥이 사랑마당 바깥편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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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랑채대청/문화재청 |
큰사랑채인 만취당 보다 규모는 작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엄이 배여 있고, 상석에 위치하나 은근 슬쩍 비켜서서도 동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가옥이 큰사랑채를 자식에게 물려준 어르신의 주거 공간인 광명헌이다.
솟을 대문밖에서도 출입이 가능하도록 별도의 문이 있으나 닫혀져 있어, 사랑마당의 중문으로 들어가면 退庵이라 쓴 편액이 보여 새사랑채의 상징을 대변하는 듯 하다.
즉 새사랑채는 자식에게 살림을 물려주고 물러나서 여유롭게 인생을 관조하며 말없이 지켜만 있어도 위엄을 갖춘 집안, 동네의 어른으로 추앙받는 원로의 공간이다.
안채에서 출생, 중사랑채서 젊음을 보내고, 큰사랑채서 가문을 운영하다가, 새사랑채서 어른으로 대접 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우리의 인생 여정이 묻어나는 주거공간의 전개과정을 한눈에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것이 만취당 답사의 즐거움이 아닐까?
200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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