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성단
외삼문과 부속건물

내삼문

금성대군 신단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려는 목적으로, 흙이나 돌로 쌓아 올려 주변보다 높게 만든 단(壇)을 말한다. 금성대군(錦城大君,1426~1457)은 조선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단종의 작은아버지이자 세조의 동생이다. 금성대군은 조선 세조 2년(1456)에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다가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순흥 부사 이보흠 및 지역 사림과 함께 다시 단종 복위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발각되어 거사를 추진했던 사람들과 같이 죽임을 당했고 순흥부도 폐지되었다.
조선 숙종 9년(1683)에 이르러서야 순흥부가 다시 설치되었고 금성대군을 비롯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신분도 복원되었다. 그리고 숙종 45년(1719)에는 순흥 부사 이명희의 요청으로 사건과 관련된 옛터인 유허지(遺墟址)에 제단을 설치하였다. 이곳 단소는 돌로 만든 3개의 제단을 품(品) 자처럼 배치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앞의 동쪽 제단은 이보흠을 모신 단이고, 서쪽 제단은 함께 죽은 선비들을 추모하는 단이다. 마지막으로 중앙 뒤쪽에 있는 제단이 바로 금성대군 신단이다. 당시 순흥에서는 금성대군을 신령처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제단에는 신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조선 영조 18년(1742)에는 경상 감사 심성희가 요청하여 제사를 모시는 단소를 정비하였다. 1980년 무렵에는 단소 앞에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재청(祭廳)과 제사를 준비하는 건물인 주사(廚舍)를 건립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까지도 이곳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유림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현장 안내문 발췌)


유명조선 단종조 충신
금성대군 성인신단지비

금성대군지위

부사 이공보흠지위

제의사지위

요즘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흥행의 여파로 전국의 단종과 관련 있는 장소가 핫프레이스로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금성대군. 위리 안치지(2007년)
현재는 철거한 것 같습니다.

은행나무.
금성단 배치도에는 충신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전 2005년 저의 글에는 압각수라고 하였습니다.
"압각수(鴨脚樹)는 금성단 뒤편에 있는 은행나무로 오리발처럼 생겨서 그렇게 불려지며 역시 단종복위와 금성대군과 관련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수령이 1000년도 넘은 은행나무는 금성대군 죽음 후 말라죽었다가 순흥 도호부가 복권되자 소생했으며, 동네에서는 동신목(단종의 몸)으로 모시고 정월 대보름이면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2026.04.19
*제단 사진은 라호르 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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