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대구시

대구...간송미술관 추사의 그림 수업 展(1)

임병기(선과) 2026. 5. 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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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그림수업

2026.04.07~07.05

 

첫날 다녀왔습니다.

한문 해석은 언감생심, 사진은 늘 엉망이지만, 관람 기회가되면 어떤 작품이 전시되는지 먼저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계산무진溪山無盡, 김정희, 19세기 중반
추사체의 완성을 보여주는 글씨로 김정희가 계산초로 김수근에게 써준 것이다. 고문자인 전서와 예서등 여러 서체의 점획을 독창적으로 변형하고 재결합하였다. 물이 흐르는 골짜기[谿]와 우뚝 솟은 산[山]의 형상을 반영해 회화미를 부여하고, 의미와 형태에 맞춰 글자의 배치에 변화를 주어 균형미를 극대화했다. 전.예.해.행.초서의 필법이 융합된 추사체의 완결이자 서화일치와 법고창신의 전형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권돈인 글

청나라 시인 16명의 글

장악진 글

오찬

조진조 글

반희보 글. 반춘기 글

왕조 글. 풍계분 글

조무견 글

요복증 글. 오순소 글

장수기 글

장목 글

장요손 글

고사소요高士逍遙

고상한 선비가 소요하다.

소림모옥. 소림모정

추사. 19세기 중반

묵란. 추사

추사 만년작으로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한 묵란이다. 흙에 뿌리 내리지 않고 자라 지조를 상징하는  노근란(露根蘭)을 그렸다. 극도로 연한 먹의 난초와 대비를 이루는 진한 글씨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불이선란도>를 연상시킨다. 여러 송이 꽃을 피워낸 혜초(蕙草)를 세심하게 그리고 농묵의 꽃술을 찍어 난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매어 놓은 활줄처럼 행서체로 곧게 내려쓴 제사는 결구와 간격이 가지런해 그림의 격조를 더한다 행서로 쓴 제사는 물론 난초의 운필에도 예서의 필의(筆意)가 넘쳐난다.

괴석. 조희룡

https://www.imaeil.com/page/view/2020031210093614804

묵란. 조희룡

왼쪽 상단 허공에 한 떨기 난이 돋아났다. 절벽에 매단 듯 괘현란의  법식으로 난을 그리고, 그 아래에 제사를 더해 화면을 채웠다. 오른편에 써낸 "그 뜻에 있지 자취나 모양에 있지 않다 "라는 글귀는 난을 통해 높은 정신성을 지향했던 조희룡의 태도를 드러낸다. 난과 화제를 긴밀히 배치하여 사의를 강조한 그림으로 화제가 그림을 압도하는 면이 있다.

 

이한철(1812~1893 이후) . 죽계선은 竹溪仙隱 

 

추사의 평.

붓놀림이 구차하지 않고, 경치의 구상 또한 훌륭하다. 이는 반드시 팔뚝 아래 오랜 수련이 있기 때문이다.

 

허련(1808~1893) . 추강만촉 秋江晩矚

 

추사의 평. 

또한 한 종류의 풍치가 있어, 필의에 메마르고 껄끄러움이 없으니 기뻐할 만하다.

전기(1824~1854) . 추산심처秋山深處

 

추사의 평

쓸쓸하고 고요하고 간결하고 담담하여 자못 원나라 화가의 풍치를 갖추었다. 그런데 근래 갈필을 쓰기 좋아하는 이로는 석도와 남전 만한 화가가 없으니, 이 두 사람을 좇아서 배운다면 원나라 화가의 정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낱겉모습만 취한다면 누군들 이렇게 그리지 못하겠는가.

유숙(1827~1873) .소림청장 疏林晴嶂

 

추사의 평

산의 준법과 나무를 그리는 법은 모두 각 화가에 따른 체제와 품격이 있다. 영구(이성)를 대치(황공망)와 같이 그려선 안 되고. 운림(에찬)을 영록(조맹부)과 같이 그려서는 안 되니, 결단코 뒤섞여 구분이 없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이 점에 다시 착안해야 한다.

조중묵(1820~1894 이후) . 추림독조秋林獨釣

 

추사의 평

그림의 경지가 화폭 안에 형세를 갖추어졌으나, 다만 네 그루 나무의 배치는 변화하고 생동하는 뜻이 없다.

김수철(?~1888 이후) .계당납상溪堂納爽

 

추사의 평

매우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 근래 일종의 평이하고 쉽게 그리는 방법으로 그리지는 않았으나, 다만 홍염이 너무 지나치다.

박인석(19세기) . 고촌모애孤村暮靄

 

추사의 평 

이 그림은 심청문의 필의가 있는데. 반드시 심청문에 입문한 것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부합하는 바가 있는 것인가, 횡애(가로로 겹쳐진 노을)는 가장 착색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변화무쌍한 뜻이 있어야 좋다. 이 그림은 끝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된다. 전체 그림 중에서 횡애를 그리는 하나의 방법이 이 화폭의 핵심이 되는데, 이 그림에는 전혀 변화무쌍한 뜻이 없으니, 한 번 음묵한 꼴을 면치 못하였다.

유재소(1829~1911) .추수계정秋樹溪亭

 

추사의 평

이 그림 또한 자기가 좋아하는 갈필로 그린 것으로 매우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원나라 화가의 갈필로 대치(황공망)는 일종의 깊고 유택한 기운을 갖추었고, 운림(예찬)은 특히 간결하고 고졸하이 장점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 어떻게 붓 밑에서 금강저를 볼 수 있겠는가.

2026.04.07

 

***사진이 엉망이어서 그림 설명 일부는 "일상의 자연"(https://iloveeverydaynature.tistory.com/) 글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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