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강릉시

양양...도적사지 청석탑. 승탑 부재

임병기(선과) 2026. 3. 2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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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사지(道寂寺址)

"오대산과 이어진 정족산(鼎足山)의 주맥인 절골에 있는데 주소는 양양군 서면 수리 628-3번지이다. 절터 동쪽은 다락 논으로 활용되고 있고, 서북쪽은 오랫동안 경작을 하지 않아 잡목들이 자라고 있으며, 북쪽 능선이 시작되는 지점에 좌우로 2개의 묘지가 있다. 

조선 말기까지 묘지자리에 작은 법당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주위에 많은 기와조각과 건축부재로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 석재와 자기 조각들이 산재해 있는데 이로 볼 때 도적사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불상을 반출하였다고 하는데 확인할 수 없다. 절터 북쪽에 있는 묘지를 조성할 때 둥근 맷돌,  기와 조각과 불에 탄 흙 등이 출토되었다는데 둥근 맷돌도 외부로 반출되어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현재 도적사 창건에 대한 구체적인 서면기록은 없지만 절터에서 발견된 청석탑 및 와편 등 유물을 토대로 추정해 볼 때 불교가 크게 성행했던 고려 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몇몇 문헌들에 도적사의 위치와 존폐 여부를 알려주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시대의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에도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데 대동지지에 18세기 중엽에 폐사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하지만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는 18세기말에도 도적사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어 정확한 폐사 연대를 확정하기 어렵다.

이들 기록 이외에도 여지도서(輿地圖書 : 영조 33년 1757)에 도적사가 정족산 자락에 있었는데 폐사되었다는 기록과,  현산지(峴山誌 :1757~1899년)에는 부 남쪽 15리 수동(水洞)의 북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하면서 숙종 16년(1690) 경신에 “화적(火賊)에 의해 겁탈당한 바가 있어 중들이 모두 슬퍼하여 흩어졌다(爲火賊所劫仍以寺憤僧散/위화적소겁잉이사분승산)”라고 적혀있다. 

조선 전기(중종 25년, 1530)의 대표적 지리지인 신 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도적사가 오대산에서 이어오는 정족산(鼎足山) 주맥에 있으며, 정족산은 양양도호부에서 서남쪽으로 40리 떨어진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기원집(杞園集)의 ‘기원선생연보’에 어유봉(魚有鳳 : 1672~1744년)이 1692년 가을에 처남인 홍유인 [洪有人 자:홍인보(字:洪仁甫) / 1667~1694년]과 함께 도적사에서 글을 읽었다는 기록 [추여홍인보독서우도적사/秋與洪仁甫讀書于道寂寺]도 있다."(양양문화원)

청석탑 부재

도덕사지에서 수습된 탑재. 양양문화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동일 층 탑신석과 옥개석이 일석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층청석탑이 5층 이상으로 조성된 것을 고려하면 많은 부재가 망실된 듯합니다. 또한 점판암이 아니지만 몇몇 논문에 청석탑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옥개석 1

훼손이 심합니다.

낙수면 물매는 완만하며, 상부에 돋을대를 둘러 상층 탑신석을 끼울 수 있는 구조입니다.

우리가 다층청석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의 하나입니다. 얼핏 찰주공처럼 보이는 중앙 각형 홈은 3매 부재 전부에 있어 찰주공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후대 특정 목적으로 가공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4단 층급받침, 탑신석에는 우주를 모각하고, 원안에 범자문을 새겼습니다.

우주에 선각으로 마치 보조 우주처럼 새긴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범자문

옥개석 2

옥개석 1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림마루가 높고, 상하 관통된 풍탁공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높은 내림마루, 상하관통 풍탁공, 상층 탑신석을 낄 수 있는 돋을대(탑신받침)는 백제계 석탑의 특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도적사지와 백제계 장인?

그건 저의 몫이 아닌 것 같습니다.

높은 내림마루. 풍탁공

상하관통

사진은 없지만, 옥개석 1의 풍탁공은 위치가 모호했습니다.

범자문

범자문

범자문

탑신석의 선각의 보조 우주?

4단 층급받침

1단, 3단과 2단, 4단의 폭이 상이합니다.

전층 옥개석 층급받침이 깊게 조성되었습니다.

옥개석 3

물매는 급하지 않고, 보조 기둥(?)을 선각으로 새겼습니다.

3단 층급받침. 탑신석 두 면에 범자문이 있으며, 훼손된  두 면에도 범자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범자문

3매 석탑 부재

동일층 옥개석과 탑신석이 일석, 낙수면 물매 완만, 돋을대를 두어 산부 탑신석을 끼울 수 있는 구조, 높은 내림마루, 상하관통 풍탁공, 4*4*3의 옥개석 층급받침은 깊게 조성되었습니다. 탑신석의 범자문, 보조 우주, 용도 불명의 각형 홈이 있습니다. 논문이 발표되었지만 점판암으로 조성되지 않은 탑도 청석탑으로 분류되는지 궁금합니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진. 양양문화원)

제가 위에서 분류한 옥개석 1이 하층석, 옥개석 2는 중층석, 옥개석 3은 상층석입니다.

 

우리나라의 다층 청석탑

https://cafe.daum.net/moonhawje/MebK/53

부도재

자연석으로 조성한 지대석, 육각 하대석, 육각 옥개석과 보주

육각형 대석

원형 사리공, 2단 괴임., 모서리에 돋을대를 조성 육각으로 구분

옥개석의 귀꽃

옥개석과 일석인 연화보주

옥개석과 연화보주

도적사지에서 반출된 육각석재는 탑신석이 망실된 조선시대에 조성된 승탑으로 추정됩니다. 그 옆으로 같은 사지에서 발견된 돌확 2개가 있으며, 이 외에도 기와 편 도자 편 등이 수습되어 문화원에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육각 승탑

https://cafe.daum.net/moonhawje/MebK/481

 

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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