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대구시

대구...학산 월성 최씨 묘역 향로석

임병기(선과) 2022. 9. 2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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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청 맞은편 학산

인근 주민들에게 운동 코스로 자리 잡은 나지막한 산입니다.

 

거의 매일

왕복 1시간 20분 정도 운동을 하면서도 오늘에서야 묘지 향로석의 태극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증자헌대부 예조참의 월성 최공만O묘

정부인 월성 이씨 묘 쌍봉 부좌 금좌

 

상석은 정면을 깎은 후 명문을 음각했습니다

 

측면

자 참봉 영갑

손 참봉 OO

증손 OO.OO.OO

 

계축 시월 일

계축년은 언제일까요?

 

아래에서 밝혀보겠습니다

 

상석

상석도 고석이나 대석 없이 자연스럽게 마련했습니다

 

향로석

정면만 정치하며 태극문을 새겼지만 측면, 후면은 거칠게 다듬었습니다.

 

참봉 최영갑의 묘

위 무덤 월성 최씨 예조 참의의 아들입니다.

 

상석과 향로석

아버지 묘 상석과 다르게 묘표를 평면에 새겼습니다

 

명릉 참봉 월성 최씨 휘 영갑지묘

 

숙부인 추계 추씨 묘

경주 산내면 내칠산.....

즉, 숙부인 묘는 멀리 경주 산내에 있으며, 집안이 거처를 옮긴 것을 시사합니다

 

자 참봉 익O

손 OO.OO.OO

즉. 맨 위 예조 참의 묘 상석에 손으로 기록된 참봉과 증손입니다.

 

경상북도 대구부 감물천회송지서령

계축 십월 일

 

아버지 예조 참의 상석과 같은 계축년에 놓았습니다

 

향로석도

아버지 묘역 향로석과 동일합니다.

 

아들 명릉 참봉 최영갑 묘

 

아버지 예조 참의 최O묘, 어머니 월성 이씨묘

 

결론

학산 등산로 상의 예조 참의와 정부인 월성 이씨 쌍분. 명릉  참봉 최영갑의 묘.

무덤은 최영갑과 그의 부모 산소이며, 최영갑 부인 숙부인 추씨 묘는 경주에 있습니다

 

상석에 새긴 직계 인물과 글씨체. 향로석으로 판단하면

두 봉분의 상석과 향로석은 장례 후 바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계축년에 동시에 마련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계축년

그 단서는 명릉 참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명릉은 숙종의 능역으로 졸년인 1720년 이후의 계축년입니다.

즉, 해당년은 1733.1793.1853.1913.1973입니다

1720년 이후 최영갑과 아들이 능참봉을 지냈다면 1733년과 근대인 1973년은 제외됩니다

 

그리고, 최영갑의 묘의 명문 경상북도 대구부에 힌트가 있습니다.

즉, 경상북도 대구부는 1896년 이후의 행정 구역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계축년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입니다.

 

왜 석물을 계축년에 동시에 마련했을까요?

예조 참의 부부와 아들 명릉 참봉 최영갑의 사망 후 어떤 연유로 집안은 대구에서 경주 산내로 이사를 하였으며

이후 산소를 둘러 본 예조 참의의 증손이 1913년 증조부와 조부 무덤 앞에 상석과 향로석을 동시에 조성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두 무덤은 달서구청의 공원 조성으로 파묘 직전입니다.

개장 후 태극문 향로석과 상석은 보존될는지 의문입니다.

 

매일 다니는 등산로의 향로석 태극문 때문에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아울러,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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