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제천시

제천...월악산 신륵사

임병기(선과) 2022. 6. 5.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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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그 당시에는 악다구니 멍보살이 요란하게 절집을 지키고 있었으며, 전국에서 가장 촬영 환경이 쉽지 않은 사찰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운 여름 신륵사에 젖어든 나에게 해인 스님은 엄청난 친절을 베풀며 오랜 대화를 주도하셨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오늘

산문 입구에서 뵌 해인 스님에게 인사드리고 말씀드렸더니 저를 기억하고 계셨으며, 참배하고 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실린 옛글로 대신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6925797

 

국사단

 

우리나라의 사찰 국사단

https://blog.daum.net/12977705/8726289

 

사찰 가람신을 모신 전각입니다

 

가람신

 

삼층석탑

고려 초기에 조성된 석탑으로 전합니다

 

기단부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이 감입식 결구이나 방향이 서로 다릅니다

하중 분산을 고려한 기법입니다.

상층기단에 부연이 생략되었습니다

 

탑신부와 상륜부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한 개 돌입니다.

탑신석에는 우주가 모각되었고, 옥개석 낙수면 물매는 급하며, 하부에는 전층 4 단 층급 받침, 상부에는 1 단 탑신굄을 조출하였습니다, 전각의 반전은 희미합니다

 

상륜부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찰주가 남아 있습니다

 

괘불지주

 

극락전

2008년 이후 중수한 것 같습니다

주초로 활용했던 옥개석은 한쪽에 놓여 있었습니다

높은 축대 위에 세운 정측면 3 칸, 겹처마. 다포계, 띠살문 창살, 맞배지붕입니다.

또한, 내외벽의 벽화는 우리나라 사찰 벽화로 널리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신륵사 내외 벽화와 단청은 제가 다녀온 이후 2009년 충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신륵사의 벽화를 시공한 사람이나 연대를 편년할 만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극락전 후불탱화와 벽화의 기법이 유사한 점을 감안하여 후불탱화의 화기에 기록된 ‘嘉慶十’이라는 명문을 근거로 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절대연대는 ‘십’자 뒷부분이 박락되어 명확하지 않다. ‘십’자가 포함되는 수의 하한이 ‘십구년’이므로 후불탱화의 조성 시기는 1805~1814년이 된다.

극락전의 畵籍과 후불탱화를 제작한 화승은 그림의 필법이나 상호 등을 토대로 할 때 19세기 초에 활동했던 신겸으로 추정된다. 신겸의 1821년 작으로 온양민속박물관에 소장된 후불탱화의 필력과 존상이 신륵사 후불탱화의 존상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된다. 신겸은 18세기 후반 경북 문경 김룡사를 중심으로 활약한 화원 집단 중 문경 대승사 출신의 홍안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와 같은 흔적이 여러 화적에서 나타나고 있다.

극락전의 내외부 벽과 포벽, 내부 천장의 평반자와 빗반자 등에는 다양한 소재의 벽화들로 장엄되어 있다. 외부 벽화는 200여 년이란 세월의 상흔으로 심하게 퇴색되어 상당 부분 개채 및 보채된 상태이고 내부 벽화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단청 문양을 조사한 결과 내부 문양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비해서 외부 문양은 대다수 보채 및 개채로 인해 원형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神勒寺에 그려져 있는 壁畵의 수는 136점이고 내용별로 極樂莊嚴의 의미를 나타낸 것으로 내부 반자의 極樂鳥圖, 雲龍圖, 奏樂天人圖 및 운각 반자의 雙龍圖, 대량의 蟠龍圖이고, 외부 평·창방의 瑞鳥圖 와 蟠龍圖 등이다. 고승대덕을 그린 羅漢圖, 普覺禪師圖, 馬鳴祖師圖, 賢首大師圖, 那般尊者圖 등과 작가가 교학을 겸비했던 禪僧임을 무의식중에 나타낸 大自在帝釋圖와 梵王帝釋圖 등이 있다. 교화적인 의미를 담은 벽화들로서는 慧可大師斷臂圖, 泗溟大師行日本之圖, 魏王曹操圖, 般若龍船圖, 上品上生還生圖 등이 있다. 그리고 설화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吐魚圖, 游仙圖 등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원력의 최상층부엔 그림으로 나타낸 佛의 화현인 如來圖와 문수·보현보살의 화신인 文殊童子圖·普賢童子圖 그리고 觀世音菩薩圖와 大勢至菩薩圖 등이 있으며 하단에는 극락을 엄호하고 호위하는 뜻의 金剛力士像을 표현하고 있다.

단청 및 벽화는 문양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인식하였으나 목조 건축의 부가적인 요소로 취급되어 직접적인 문화재 지정 등 적극적인 보존 노력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신륵사 극락전 단청 및 벽화에 대한 학술조사를 통하여 조선 후기 양식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음이 확인되었고 아울러 문양사의 변천을 알 수 있고 작자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4년(58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문무왕때 원효대사가 중창하고 조선시대의 무학화상이 명종때 사명대사가 중창한 고찰로 중수기에 전하여 온다. 사서의 기록은 “여지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찰 내 보물 제1296호인 삼층석탑과 기와편을 볼 때 창건 시기는 고려초로 추정된다.

극락전은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초석에 쓰인 석탑 옥개석과 전용된 기단 석재들을 볼 때 초창 당시의 건물이 아니고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문화재청)

 

목조아미타 삼존, 영산회상도(사진.문화재청)

영산회상도와 아미타좌상과 오른쪽 보살좌상은 2020년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오른쪽 보살상이 대세지 보살로 추정되어 왼쪽 관음보살 자리에 지장보살을 봉안한 것 같습니다.

(2008년 해인 스님에게 들었었는데 기억나지 않습니다)

 

영산회상도 화기의 가경십O년(嘉慶十O年)명문으로 미루어 하한선이 1814 년입니다

 

1730년에 금어 정행(正幸)이 조성하였습니다. 정행의 작품으로는 동시대에 조성한 제천 강천사 보살좌상, 백련사 아미타좌상이 전합니다.

 

제천 강천사 목조보살좌상

1736년 영조 2년 제천 금수산 조계사 극락전에 봉안되었던 아미타삼존불의 협시불로 금어 정행 작품입니다

 

제천 백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736년 영조 2년 제천 금수산 조계사 극락전에 봉안되었던 아미타삼존불의 주불이었으며 조각승은 정행正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4304

 

신륵사 극락전 현왕도(사진. 문화재청)

영산회상도와 함께 조성된 불화로 추정됩니다.

 

아래는 외부 벽화 일부

 

토어도(吐魚圖)

물고기 1 마리는 사진에 잘렸습니다

(2008년 사진)

 

위왕조조도(魏王曹操圖)

 

유선도(游仙圖)

 

사명대사 행일본지도(泗溟大師行日本之圖)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

 

혜가대사단비도(慧可大師斷臂圖)

소림굴 달마대사. 신광선사 혜가.청법대신

선종의 2 조인 혜가선사가 달마대사에게 인가받는 장면입니다

 

상품상생환생도上品上生還生圖

아미타불.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극락정토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아미타어도(阿彌陀魚圖)

극락전 참배 후

아미타 삼존과 현왕도를 촬영하였습니다.

내부 촬영 금지 경고문이 있음에도 허락 없이 촬영한다고 해인 스님에게 주의를 받았으며, 공개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문화재청 사진으로 대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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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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