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제주

제주...명월리 명월대

임병기(선과) 2021. 12. 22.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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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대

제주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난 유월 답사 때 놓쳤던 곳으로 명월 초교 맞은편에 자리합니다.

 

명월리는 관청에 근무하는 벼슬 아치들이 많이 거주하여 제주도에서는 반촌으로 알려진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로  팽나무가 군락을 이룬  문수천 가에 돌출된 암반 위에 조성된 명월대는 그들의 회합 장소로 조성된 곳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명월대를 찾은 까닭은 조선 후기 선비 들이 풍류를 즐기던 누정 문화 답사가 아니라 지붕 없이 방형, 팔각형, 원형으로 조성한 독특한 석대(石臺) 구조 때문입니다.

 

명월대(明月臺)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측면에 연농 홍종시 서硏農 洪鍾時 書)명문이 있다고 합니다.

"호남의 명필로 일컬어졌던 홍종시는 철종7년(1856) 제주성내에서 홍재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무2년(1898) 1월 한말의 석학이며 외무대신이었던 김윤식이 제주에 유배되자 그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김윤식이 조직한 시회(詩會)인 《橘林(귤림)》의 동인이 되어 많은 지식을 익히고 김윤식과 교분을 두텁게 하였다. 융희1년 (1907)에는 박영효가 제주에 유배되자 그와 교분을 맺어 개화사상에 대하여 깊은 감화를 받았다.

이때부터 홍종시는 이 지방의 선각자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자식들에게는 모두 신교육을 받게 하고 복잡한 의례절차와 생활양식을 혁신하는 데 앞장섰다. 홍종시는 광무9년 제주향교 도훈장, 1917년 제주금융조합장, 1920년대 제주면장, 1931년 제주읍장, 1934년 초대시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21년 11월 제주면장 재직 중일 때에는 워싱턴에서 열린 태평양 회의에 보낸 한국 독립을 요청하는 성명서에 제주 대표로 서명했으며, 안희제(安熙濟)가 주도한 비밀결사인 독립희생회(獨立犧牲會)를 통해 상해 임시정부와 선을 대어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도왔고 민족 대표로 추대되기도 했다.(제주도의 문화유산 83~84쪽) "(제주 환경일보)

 

외도동 월대(月臺), 삼성혈의 건시문(乾始門), 추사적거지의 추사 김선생 적려유허비(秋史金先生謫廬遺墟碑) 글씨도 홍종시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소화육년오월오일명월리 청년회(昭和六年五月五日 明月里靑年會)

1931년

 

방형기단

팔각과, 원형으로 단을 쌓았으며, 측면에 돌계단이 있습니다

 

일견

천원지방(天圓地方)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팔각은 천지인(天地人)의 인(人)인데...

 

2021.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