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제주

제주...정광사 소조여래입상

임병기(선과) 2021. 6. 2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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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얻은 제주 답사 기회

그 빡센 일정의 첫 답사지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정광사

해안마을길 188

"제주시 칠성통에 불기2491년(서기1948) 홍선자선화 보살이 창설하고 정광사라 하였으며 대서당 이라고도 불리었다. 정광사는 태고종이 창종된 이래 제반 불사에 장소를 제공하여 널리 알려졌으며, 1961년 혜종(慧宗)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였다. 도시의 발달 등으로 칠성통 도량이 협소하여 1999년 말 경에 현재의 부지를 매입하고 1999년 11월에 기공하여 불기 2545년 4월에 준공하였다. 법당을 한 바퀴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법당 뒤에 사자의 형상을 한 청정한 바위가 있다. 그 바위 위에는 수 백 년은 되었음직한 노송이 참선수행이라도 하듯 정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기이하게 여긴 혜종스님은 다음과 같은 시로서 정광사의 이전 중건한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淨岩老松 仙虎騎(정암노송 선호기)

伽藍守護 諸佛光(가람수호 제불광)

濟州西廓 海安洞(제주서곽 해안동)

移轉重建 淨光寺(이전중건 정광사)

 

정광사를 이곳으로 이전 중전하게 된 동기도 이 사자상(獅子像) 바위 위에 단단하게 결과 부좌를 틀고 앉은 노송과 무관하지 않음이 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지금의 정광사는 혜종스님의 상좌인 대권(大權)스님이 은사스님의 뒤를 이어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제주불교신문)

 

정광사 불단

 

소조여래입상. 등록 문화재 제621호

본존불 향우측에 봉안된 소조불입니다

우리가 익히 인지하고 있는 금용 일섭 스님의 작품으로, 1935년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화재로 새롭게 봉안할 불상 응모전에 출품했던 불상으로, 당선되었다면 모실 불상 실제 크기의 1/10 규모라고 합니다.

 

나발, 육계가 높고 정상 계주를 표현하였습니다. 방형의 상호, 백호가 있고, 반개한 눈, 코는 크며, 입은 다물었습니다. 
삼도가 생략되었고, 법의는 이중 착의법, 옷주름은 파상문을 이루며 흘러내렸고, 군의는 발목을 덮고 있습니다.

수인은 전법륜인으로 생각됩니다

 

정광사 입불 조성 연기문(淨光寺 立佛造成 緣起文)...출처/디지털제주문화대전


불기 이천구백육십이년 을해(佛紀二九六二年 乙亥)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불 소상(全北 金堤 金山寺 彌勒佛塑像)

출품 득선 잉이 봉안 어 강경 교당(出品得選 仍以奉安於江景敎堂)

감정 위원 미술가 김은호(鑑定委員 美術家 金殷鎬)
감정 위원 불사 강사 박한영(鑑定委員 佛事講師 朴漢永)
증사 만공 일면(證師 滿空 日面)
작자 퇴운 일섭(作者 退耘 日燮)
회주 백암 속진(會主 白岩 東鎭)
송주 상순(誦呪 相淳)
지전 상순(持殿 相淳)
화주 청신녀 연수(化主 淸信女 年守)
시주 평북 박천군 박천면 남호동 청신녀 을묘생 박일순(施主 平北 博川郡 博川面 南湖洞 淸信女 乙卯生 朴日順)

동년 납월 십일일(同年 臘月 二十日)

 

일섭 스님과. 김복진이 출품한 금산사 미륵전 주불에 관하여 법보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복원의 핵심은 본존불이었고, 이 재창조에 가까운 불상 복원을 위해 금산사는 입찰 비슷한 방식으로 두 곳에 포트폴리오 제출을 의뢰했다. 하나는 보응 문성(普應 文性)과 금용 일섭(金容 日燮) 등 화승 문중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당시 드물게 일본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조각을 전공한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이었다. 일종의 전통과 현대의 대결 구도로 묘사되는 경쟁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경쟁에 의한 입찰 방식이 당시 일반적인 일이었는지, 혹은 새롭게 시도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목적은 주최측 금산사가 아직 복원의 방향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택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혹 입찰이 김복진 대신 조각승 대 조각승의 구도였을 수도 있을까? 아마 스님들 사이에서는 이런 경우 여러 가지 선례를 따져 누구에게 의뢰할지 적절히 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입찰적 경쟁 자체가 아마도 김복진이라는 선례없는 인물, 즉 조각승이 아닌 일반 조각가에게도 기회를 열어주기 위한 포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김복진을 내정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일단 제출된 포트폴리오로 냉정하게 평가하려고 했을 것이다.

당시 금산사의 의사 결정자는 주지였던 성열(成烈), 그리고 불상복원 대시주를 자임한 김수곤(金水坤)이었다. 성열 스님은 그 자신도 화승으로서 문성·일섭스님과 잘 아는 사이였고, 반면 김수곤은 자신의 딸에게 서예를 가르쳤던 서예가 김돈희를 통해 당시 불교근대화에 앞장섰던 박한영, 그리고 이당 김은호 화백 등을 소개받아 교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복원불사 입찰 심사위원으로 박한영, 김은호 같은 분들이 참여한 것이 흥미롭다. 이들 중 특히 김은호 화백은 이미 김복진과 교유가 있던 관계였기 때문에 결국 대시주 김수곤이 전통적인 불상보다 새로운 불상 조성을 원했고, 그래서 심사에 박한영, 김은호 등을 참여시켜 김복진이라는 서양조각을 전공한 조각가에게 이 일이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했던 것이 아닌가도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주지스님의 영향력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주지스님도 나름대로는 손을 썼을 것이라 믿는다면, 이 경쟁이 어느 한쪽에만 유리한 공정치 못한 경쟁은 아니었을 것 같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찾은 정광사

출입과 사진 촬영을 흔쾌하게 허락한 스님에게 감사드립니다.

 

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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