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구례군

구례...천은사 부도전

임병기(선과) 2021. 5. 10.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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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부도전

조선후기~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부도입니다.

 

가까이서 살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닫힌 나의 성정 탓인지 까치발로 만족해야했습니다.

 

도난 우려 때문이겠지요.

 

2011년 사진

 

부도(1,2).현공 처사. 장성 서씨

두 부도가 관련 있는 부도인지, 아니면 스님부도와 위계를 두기 위해 앞쪽 하단에 조성한 것인지 확인하지 못 했습니다.

 

부도(1). 현공처사 박OO탑(玄公 處士 朴OO塔)

별석 대좌, 별석의 탑신석과 옥개석과 상륜은 일석입니다

 

부도(2). 장성서씨사리탑(長成徐氏舍利塔)

씨칠십사가경이년정사치출사리무년이월자김추동입(氏七十四嘉慶二年丁巳齒出舍利戊年二月子金秋東立)

1797년(정조(正祖 21) 74세로 타계한 장성서씨의 치아사리를 1798년 아들 김추동이 세웠습니다.

 

부도(3). 영해당정원지탑(影海堂正源之塔)

불기이오삼사년이월일(佛紀二五三四年二月日). 1990년

 

부도(4). 송파당대사탑(松波堂大師塔)

복련을 새긴 팔각 대좌, 팔각 탑신 상,하단에 복련과 앙련을 새겼으며, 탑신과 일석으로 일연화보주를 올렸습니다

 

부도(5). 성당대사(性堂大師)

조성시기가 확인되지 않은 종형 부도입니다.

 

방형대좌 위에 별석의 탑신을 올렸습니다.

탑신 하단에 두 줄 양각띠를 두르고. 중앙에는 4개 유곽과 그 안에 9개 유두를 새기고 별석의 상륜부가 있습니다.

 

천은사 홈페이지에는 성당대사(性堂大師)로 표기하였으며, 한국의 사찰문화재에는 정성당(靜性堂)으로 실려 있습니다.

 

부도(6). 당호를 새겼으나 육안 구분이 힘듭니다.

대좌, 탑신, 옥개석, 상륜이 별석입니다.

사모지붕위에 상륜부가 절병통 느낌입니다.

 

부도(7). 당호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종형 부도, 원형 대좌 위에 탑신석과 작은 연화보주를 일석으로 조성하였습니다

 

부도(8). 용담당(龍潭堂. 1700~1762)

용담당 조관 스님 부도는 실상사. 파근사지. 천은사(감로사)에 있습니다.

 

용담조관 龍潭 慥冠禪師 ...출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1700(숙종 26)∼1762(영조 38). 조선 후기의 승려.편양문파(鞭羊門派)의 승려. 전라북도 남원 출신. 성은 김씨(金氏). 자는 무회(無懷), 호는 용담(龍潭). 어머니는 서씨(徐氏)이다. 용이 승천하는 태몽을 꾸고 낳았으며, 생일은 사월초파일이다.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상을 지내면서 인생의 무상을 느껴 출가를 결심하였다.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1718년(숙종 44)감로사(甘露寺)상흡(尙洽)에게 나아가 머리를 깎고, 태허(太虛)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1721년(경종 1)부터 화엄사(華嚴寺)상월(霜月) 문하에서 수업하다가, 1723년 영남과 호남의 고승을 찾아 두루 편력하였다. 이때 영해(影海)·낙암(洛庵)·설봉(雪峯)·남악(南岳)·회암(晦庵)·호암(虎巖) 등을 만나 선교(禪敎)를 궁구하여 명성을 얻었다.

 

행각을 끝낸 뒤 반조(返照: 고요히 삼매에 들어 자기를 돌이켜봄)에 전념하다가 지리산 견성암(見性庵)에서 『기신론(起信論)』을 읽고 홀연히 깨달았다. 그때 월저(月渚)의 고제(高弟: 제자를 높여 부르는 말) 수일(守一)이 찾아와 서로 문답하여 신기(神機: 정신과 근기)가 투합하였다.1732년(영조 8) 지리산 영원암(靈源庵)에 들어가 토굴(土窟)을 지어 가은암(佳隱庵)이라 이름하고 만년의 안식처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사방 승려들의 간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회문산 심원사(深源寺), 동락산 도림사(道林寺), 지리산의 여러 암자에서 『선문염송(禪門拈頌)』과 원돈교(圓頓敎)의 요지로 20년 동안 묘법(妙法)을 선양하였다.

 

1749년 겨울에 상월의 의발을 받았다. 1751년 겨울에 강석을 파했다가 문인들의 간청에 못 이겨 1758년 봄 지리산 대암(臺庵)에서 강석을 열었지만, 다음해에 다시금 파하였다. 1762년 6월 실상사(實相寺)에서 나이 62세, 법랍 44세로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수습한 사리 5과를 감로사·실상사·파근사(波根寺) 등에 탑을 세우고 나누어 봉안하였다.50세 이후 의해지견(義解知見: 이치, 이해, 지식, 견해 등 논리적인 것)을 싫어하고 오로지 반조에 몰두했으며, 특히 만년에는 정토문(淨土門)을 즐겨 언제나 사람을 접할 때 ‘유심자성(唯心自性)’이라는 말을 하였다. 제자로는 성암(聖巖)·혜암(惠庵)·죽암(竹庵) 등 수십 명의 고승이 있다.)

 

실상사

파근사지

파근사지에는 3기 부도가 있습니다.

2기 부도에는 당호가 새겨져 있는 까닭에, 당호를 새기지 않은 부도가 용담당 부도로 추정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별석의 팔각 대좌에는 앙련을 새겼으며, 

탑신 상,하부에 복련과 앙련이 조식되었습니다.

별석 상륜부에는 2단 굄위에 큼짐막한 보주를 올렸습니다.

 

탑신 상부. 상륜

 

별석 대좌. 탑신 하부 앙련

 

부도탑비.1762년

전면. 용담대화상사리탑(龍潭大和尙舍利塔)

뒷면. 숭정기원후임오십월일입 합사 전영 도감진초 별좌포성 주지 책영 홍주 차준 환척

(崇禎紀元後壬午十月日立 合寺 全營 都監震楚 別座抱性 住持 策英 洪主 此俊 幻倜)

 

부도(9). 범난당영재탑(梵鸞堂英宰塔). 1929년

불기이구오육년경향법려입(佛紀二九五六年京鄕法侶立)

 

부도(10,11). 당호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부도(11), 그리고 부도 대좌와 옥개석

 

열려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호를 직접 확인하지 못하여, 저의 마음이 닫힌 듯 갑갑했습니다.

 

2021.04.09

(천은사 홈페이지. 한국의 사찰문화재에서 발췌,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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