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고령군

고령...장육당(藏六堂)

임병기(선과) 2021. 4. 1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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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육당(藏六堂)

상곡리 미륵불을 뵙고 내려오는 길, 흔치 않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등산로 들머리에서 벗어나 있어 미륵산 등산로 공사 중이 아니었거나, 여름이었다면 인연 짓지 못했을 겁니다

 

T장형, 또는 丁자형 건물

주지하시듯 丁자형은 왕릉 제향 공간인 정자각의 전형적 구조입니다.

또한, 호남 사찰의 관음전이나 원통전의 전각에서 나타나는 구조로 선암사 원통전, 여수 흥국사 원통전, 쌍봉사 호성전(?) 등이 있으며, 백제 사찰 전각의 배치라는 글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력 쇠퇴로 확언은 어렵지만 일반 민가 건물 구조에서는 처음 접하는 것 같습니다

 

장육당(藏六堂)

상곡리는 전의 이씨 집성촌으로 1611년(광해군 3) 무렵 병조참의를 지낸 이지화(李之華)가 입향한 마을이며, 그이 아들인  이윤(李玧)이 1671년(현종 2)에 건립한 사랑채 당호입니다.

 

이윤(李玧)

"자는 여온(汝溫), 호(號)는 장육당(藏六堂)이다. 문음으로 통덕랑(通德郞)을 받았다. 참의 이지화(李之華)의 아들이고 손처눌(孫處訥)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외가의 일로 벼슬에 나가지 못하였으나 후학 교육에 힘써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부윤 윤리(尹理)·김수남(金粹南) 등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후손 기로(基魯) 소제(所製)의 행장(行狀)과 조긍섭(曺兢燮) 소찬(所撰)의 묘문(墓文)이 있다. 이 건물의 명칭이 장육당인 데에는 그의 호를 따온 까닭도 있겠지만, 이윤이 당시 외가의 일로 벼슬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드러내지 않고 거북같이 6가지를 감추고 있다는 뜻에서 육당이라 칭하게 되었다. 또 그가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감출 ‘장(藏)’ 자를 썼다고도 한다"(디지털 고령 문화대전)

 

 장육은 구장육지례(龜藏六之義)에서 따온 말로서 창건자가 벼슬길을 마다하고 오직 후학 양성에 힘쓰며 은둔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상징적으로 나타낸 뜻이며 이에 호(號)로서 당호(堂號)로 삼았습니다.

구장육(龜藏六)은 거북이 위험에 직면하면 갑속에 머리, 꼬리. 네다리를 감춘 것을 말하며,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속세에 은둔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출입문

 

정면 5칸, 측면 3칸의 ‘T’ 자형 건물

후면에 4칸 방, 좌측에 누마루를 깔고 맞배지붕에 연결하여 부섶 지붕을 올렸습니다.

중앙 2칸 방 앞 전면에는 대청을 깔았으며, 협칸 2칸 방 앞에는 쪽마루를 걸었습니다. 

 

장육당

전면부 마루 끝에 현판을 걸었습니다.

중앙 2칸 방과 대청, 좌 측 1칸 방과 쪽마루. 좌측 누마루와 부섶지붕

 

좌측 방, 누마루

 

우측방, 쪽마루, 전면 마루에 달린 널판 문

 

건물 뒷면

 

丁자형 건물은 흔치 않은 구조입니다.

상곡리 미륵불 답사 기회가 되면, 구장육(龜藏六)을 되새기며 장육당(藏六堂)을 둘러보기를 권합니다.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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