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의령군

의령...천락마을, 황국신민서사지단비

임병기(선과) 2021. 1. 1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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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면 천락 마을

한적한 시골마을의 전형이며 지형에 맞추어 계단식으로 촌락이 형성되어있습니다. 

 

 

마을 당산과 비석을 찾아왔지만 당산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도로변에서 공사 차량을 통제하는 어르신에게 여쭈었더니 정자를 가리키며 당산나무도 베어냈으며, 조산도 없어졌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당산나무를 배어 낸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천락 마을을 찾은 목적인  당산  축대에 있다는 황국신민서사지단비(皇國臣民誓詞之壇)도 사라졌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다행히 그대로 있었습니다.

 

 

당산 축대에 있었던 비석과 제단은 정자를 조성하면서 제거하여 방치되어 있습니다.

 

 

(상)황국신민서사지단이 새겨진 비석

(하) 제단으로 추정했던 돌도 치석 되었으며 방형의 윤곽이 남아 있어 다른 용도 가능성도 있습니다

 

 

 

황국신민서사지단(皇國臣民誓詞之壇)

 

"황국 신민 서사비는 1930년대 후반 중일 전쟁이 시작되면서 민족 말살 정책의 하나로 내선 일체·황국 신민화 등을 강요하면서 일본 제국주의가 암송을 강요한 황국 신민 서사를 새긴 비이다. 황국 신민 서사는 조선 총독부 학무국이 교학(敎學) 진작(振作)과 국민 정신 함양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기획하였으며, 학무국 촉탁으로 있던 이각종(李覺鍾)이 문안을 만들었고, 학무국 사회 교육과장 김대우가 관련 업무를 집행하였다. 이에 따라 1937년 10월 2일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이 결재함으로써 공식화되어 보급되었다.

 

황국 신민 서사는 학교·관공서·은행·회사·공장·상점 등의 모든 직장의 조회와 각종 집회 의식에서 낭송이 강요되었으며 국민 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의 실천 요강에는 기회 있을 때마다 황국 신민 서사를 낭송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보급을 위해 아동용 100만 부, 일반용 20만 부를 인쇄·배포했으며 신문·잡지 등에 싣는 한편, 영화로 제작·상영하고 라디오로도 방송·선전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나라의 황국신민 서사비

http://blog.daum.net/12977705/8726930?category=5096

 

대구, 현풍초교 황국신민서사비

http://blog.daum.net/12977705/8726663?category=5257

 

 

 

천락 마을 당산에 조성한 황국신민서사지단

즉, 일제는 학교, 관공서뿐만 아니라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우리 고유의 마을 신앙인 성황당(단)에도 설치하였음을 보여주는 귀한 사료입니다. 또한, 우리의 풍속을 미신으로 치부하며, 미개한 민족으로 업신여겼던 그들의 치졸한 눈가림이 노출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황국신민서사지단(皇國臣民誓詞之壇)

마을 앞 들판 지명 유래에서 그 단초가 희미하게 스쳐 가지만...

 

"동네 앞들 이름이 끽기들이다. 옛날 큰부자집 논을 소작으로 부치던 터이라 일보는 마름(사음)에게 잘 보여야 소작료를 적게 내기 때문에 작황을 둘러보게되는 때에는 온마을 사람들이 마름을 따라 다니면서 비위를 맞추어야 했고 푸짐한 술자리를 마련하는 등 야단스러웠고 드디어 소작료가 많이 탕감되자 모두가 기뻐서 한바탕 매구놀이를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논붙이는 민초들이 기꺼워 했다는 뜻에서 들이름을 끽기들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봉수면 홈페이지)

 

 

 

 

보존되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과거도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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