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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보은군

보은...속리산 본속리암지

by 임병기(선과) 2019.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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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속리암지

저의 미답사 목록에는 천왕사지(출처를 찾지 못 함)로 등록되어 있었으나, 금년 봄 오분향님이 다녀온 후 본속리암지로 알려주었습니다.

속리산 폐사지와 문화재에 대하여 해박하신 법주사 중사자암의 지륜스님께서도 정시한의 산정무한, 퇴경당스님  전서의 한국의 사암에도 본속리암지가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는 길

꼭 답사를 원하시는 분에게는 디테일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상환암

 

 

고갯마루

 

 

상환석문(전)

 

 

상환석문(후)

 

 

 

 

수정암지

 

 

 

산 허리를 가로질러

앞쪽 바위에 올라서면

 

 

전망바위에서의 조망.

 

 

부도가 먼저 반깁니다.

돌아 나오면서 살펴보고...

 

향좌측 소로를 따라 작은 도랑을 건너면 사지가 눈앞에 전개됩니다.

 

 

금당지

부처님께서 반겨 주십니다.

본래 위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금당 

평탄지 아래로 내려가면 도괴된 석축이 보입니다.

 

 

1단.2단

석축과 석축 사이 공간이 좁아 전각은 없었고, 상부 금당 기초를 든든하게 한 구조로 추정됩니다.

 

 

금당 죄우로 두 계곡이 합수하며 서편 계곡부에 석축이 가장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석축

맨아래에서 바라 본 석축.

 

 

금당지

뒤편 중앙과 동쪽에는 바위가 막고 있으며, 서편은 석축을을 쌓았습니다.

 

 

금당지

 

 

금당지

 

 

금당지 서쪽 뒤

 

 

본속리암

 

정시한(1,625~1,707)의 산중일기 속의 본속리암지

 

정시한 선생의 첫 여행(1,686년) 중 속리산 본속리암에서 40일(10월 18일~12월 2일) 이상을 머무르며 스님들과의 대화, 재를 올리는 이야기, 불상, 주변 사암 방문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10월 18일

흐리고 추웠으며 저녁에 눈이 내렸다.

본이암에서 본속리암에 도착했다. 이절은 바로 천왕봉의 아래에 위치하여 한적한 것이 머물기에 매우 알맞은 곳이다.

 

이틑날 본속리암지를 살펴 본 글이 있습니다.

 

10월 19일

절은 간좌곤향(북동쪽에서 남동쪽을 향하는 방향)르로 좌우모두 기암에 둘러싸여 있으며,좌청룡 우백호에 해당하는 석봉도 기이하다.(중략)바위 틈에서는 샘물도 솟고 있다. 터는 매우 좁으나 높고 깊으며 그윽하고 조용하니 참으로 도인이 있을 법한 곳이다. 보통의 눈으로 보아도 이 곳이 이 산중의 제일 명당인 것을 알 수 있었다.단지 동남방이 너무 높아 겨울에는 오후가 되어야 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흠일 뿐이다.

 

10월 24일

수륙재 준비로 분주하여 상환희암(상환암) 옮길려고 했으나, 절이 좁아 서방갑암에서 재를 올린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10월 28일

재에 참여했던 남여 5.6인이 암자와 불상을 구경하고 돌아 갔다.

(현재 불두가 결실된 불상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11월 6일

청주에서 포수 수십명이 관아에서 산에 오는 일을 얘기하며 먹을거리를 찾아 스님이 음식을 내어 주었다.

 

11월 13일

저녁에 콩죽을 먹고, 김생 글씨 60자를 썼다.

 

11월 25일

(상환암에서 본속리암으로 오르는 길을 묘사하였습니다)

돌길이 허공에 매달린 다리 같이 험하여 백보에 한 번씩 쉬는 식으로 4~5리를 갔다 왔다.

(오늘 우리가 등산한 길이 아니라 상환암 산신각 뒤편으로 올라가는 루트 같습니다)

  

11월 28일

저녁 식사뒤 보은 수령 심사침과 심중묵, 성현이 연이어 가마를 타고 왔다.

 

 

반출을 시도 했던 것처럼 가장자리에 서향하여 계십니다.

 

 

석조여래좌상

불두는 결실되었고 법의는 우견편단, 법의 자락은 두텁습니다.

두 발을 드러낸 결가부좌이며, 왼손에는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 같지만 분명하지 않습니다.

허리는 잘록하고, 무릎은 안정감이 있습니다.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 어깨의 당당함은 약해졌으나 고려전기를 하향선으로 보고 싶습니다.

 

정시한의 산붕일기에 등장하는 불상이었을까요?

 

 

 

 

 

  

 

 

 

 

 

 

  

 

수조(1) 

금당지 동편 계곡에 반파되어 있습니다.

수조 크기로 보아 많은 승려가 주석하였음을 추정 할 수 있으나 현재 사지는 너무 좁습니다.

금당지 뒤편, 동쪽 계곡 건너 등에 전각터가 일부 남아 있습니다..

 

 

 

반파된 수조

 

 

수조(2)

 

 

사지,불상, 수조

답사기를 비롯 어떠한 자료도 보고되지 않은 상태인데 문외한이 썰을 푸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힙니다..

 

 

묵계당(默契堂)부도

전망바위 아래에 위치

여기에서 한 달을 머문 정시한의 산중일기에는 부도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속리산 대암암 정관스님, 탈골암 신미, 학조대사의 부도를 기록한 그의 시선으로 놓칠리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부도는 정시한이 본속리암을 방문한 1,686년  이후 조성된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합니다.

 

 

지대석은 결실,

상중하대석이 일석, 중대석에는 당호를 새김

탑신은 망실

옥개석과 상륜부가 일석

 

 

팔각중대석 3개면에 당호를 새겼습니다.

 

묵默 

 

 

계契

 

 

당堂

 

묵계당 默契堂

 

 

대좌

석등 고복형 대좌 느낌입니다.

 

하대석 복련, 팔각 중대석, 앙련을 조식한 상대석

 

 

하대석

 

 

중,상대석

 

 

상대석

 

 

옥개석과 상륜부

사모지붕, 절병통은 망실

 

 

 

그런데

부도 뒤편 바위에도 명문이 남아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합니다.

 

 

-묵계당 부도비.

-다른 스님의 마애부도(산골처)

 

훗날 누군가가 밝히리라 믿으며..

**

명문은 숭정 4년 1,631년입니다.

묵계당 부도 조성년대로 추정됩니다(2,020년 09월 12일 덧 붙임)

 

 

 

세심정에서 1시간 10분 소요

오늘

폐사지 3곳 답사 일정 때문에 1시간을 머물지 못하고 발길 놀리려니 너무 아쉽습니다.

다시 찾기 힘들텐데.

 

다음 답사자들의 심도있는 답사기를 기대하면서.

 

 

 

201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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