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거창군

거창...거창박물관 이형석탑(?)

임병기(선과) 2019. 10. 11.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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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탑

아림사지에서 발굴된 유물입니다.

그런데 왜 안내문에는 이형석탑이라고 했을까요?

 

참고로

아래에 아림사시 오층석탑 글을 올립니다.

 

 

(2008.08.16)

 

 

 

하대석

묻혀 있지만 팔각 갑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뒤집힌 상대석 같습니다.

 

 

거창박물관 석등(부도) 옥개석 아래 부재

이 부재가 이형석탑의 하대석 아니었을까요?

 

 

하대석

탑신

옥개석

 

 

부도 탑신석 아닐까요?

 

 

팔각 옥개석

성혈이 있습니다.

 

 

보주?

사자 입니다.

두마리 사자가 등을 맞대고 서 있습니다.

두발을 내리고 있어 탑, 석등의 간주석은 아닌 듯 합니다.

 

 

이형석탑은 아닙니다.

석탑부재가 없기 때문 입니다.

부도재로 추정되지만 그마져도 확신이 없습니다.

 

 

2019.09.28

 

아림사지 오층석탑

 

 

 

로터리.1970년대에는 조국근대화의 상징물처럼 방방곡곡 모든 소읍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분수대, "무찌르자 공산당" "전국 쥐잡기 일제기간" 등의 상황에 따라 대형 표어가 새겨진 입간판이 서 있는 읍내의 교통.상업.문화의 중심무대였다. 지금은 편리함과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흉물로 인식하여 대부분 철거되고 흔적조차 찾을 길없이 네거리 또는 교차로로 불리운다.

 

모처럼만에 로터리에서  "삼각지 로터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람을 아쉬워 하며..."로 시작되는 불후의 명곡이며나의 애창곡인 매혹적인 저음의 가수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가사가 아련히 떠오른다. 또한 로타리는 임택근 아나운서의 독특한 음색의 마라톤 생중계 장면도 잊혀지지 않은 추억 저편에 남아 있다.

 

"전국에 계시는 애청자 여러분(중략), 우리의 건각들이 향토와 모교의 명예를  두 어깨에 걸머지고,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의 우래와 같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공덕동 로터리를 힘차게 돌고 있습니다." 이런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은 참으로 인간적으로 세상을 살아온 세대 아닐까? 중요한 것은 남겨져야 하건만 자꾸만 자꾸만 시나브르 사라지고 잊혀져 가고 있으니 서럽지 아니한가?

 

 

거창군청 앞 로타리에 자리한 아림사지 오층탑이다. 여러번 답사길에 번번히 놓쳐 버렸던 석탑을 이른 아침에 찾았다. 거창의 중심가에 위치하여 출향민들에게는 동구밖 당산목처럼 향수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을 탑이다. 그런저런 사연을 간직한 석탑은 휴일 아침 오랫만에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늦잠을 즐기고 있는 듯 여유가 있어 보인다.

 

아림사는 언제적 절집이었을까? 거창의 또다른 이름 아림娥林은 고려시대에 거창 상동에 있었던 숲이며 아림사는 그 숲에 위치한 고찰이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거창에는 아림초교가 있으며 대성고의 예술제는 "아림예술제" 거창교육지원청의 나눔운동은 "아림1004"이어서 아름다운 숲과 절은 사라졌지만 지역민들에게는 영원히 함께 동행하는 동반자로 자리잡고 있다.

 

 

대찰이었던 아림사는 고려시대 왜구와 몽고의 침입에 전화를 입고 폐사되었으며 이 석탑과 석등 하대석. 석탑 부재등이 남아 전해 오고 있다. 초층 탑신 면석에는 훼손이 심하여 사천왕(?)인지 신장상인지 불분명한 도상이 부조되어 있다.

 

 

한 면의 부조는 유난히 훼손이 심하다.

 

 

석등하대석, 후면이 보이는 석조 부재에도 석탑 면석으로 보이는조형물이 부조되어 있어 아림사에는 최소 2기 이상의 석탑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요즈음이라면 기단 갑석도 이렇게 단순한 방형으로 복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창박물관 아림사 유물

 

신라고찰 아림사지에서 수습한 유물로 알려진 부재를 쌓아두고 있다. 석조물 맨위에는 쌍사자받침석이 거꾸로 세워져 있고, 그 밑에는 옥개석, 맨 아래에는 연화대 받침석이 마주 놓여 있다. 박물관 안내석에는 이형석탑으로 표기(몇 년 전에 다녀올 때는 그랬다)하였지만 석탑은 아니다.

 

 

향교.서원의 초석으로 사용된 우리나라 다른 지역 절집 석탑처럼 아림사지 오층탑도 거창 객사의 건축 부재로 쓰이다가 1975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양우주가 모각된 초층 탑신과 낙수면 물매가 깊은 5개의 옥개석만 본디의 부재로 보이지만 여러 기의 탑 부재 조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옥개석 층급은 4개이다.

 

 

매연과 소란스러움 등 주변 여건을 고려한다면 거창 박물관으로 이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지만 거창 군민들의 가슴에 새겨진 추억을 생각하면 쉽게 결정내릴 사안도 아닐 듯 생각된다. 돌아가는 삼각지 마지막 가사 내용처럼 잊어 버린, 떠나버린 추억 저편의 그 사람을 잊지못해 서글피 고향을 찾은 출향민이 탑 마져 사라진 것을 발견하면 얼마나 애통하게 눈물을 흘리고 발길을 돌리겠는가?

 

201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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