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부산시

부산...범어사 원효암

임병기(선과) 2019. 5. 1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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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2006년

우리카페 회원들과 두 번 들렸습니다.

 

오늘은

용바위 마애불 근처 마애부도를 답사하기위해 원효암으로 접어 들었습니다.

범어사에서 2~30분이면 충분한 거리 입니다.

 

 

솟을문 못 미쳐

동편탑.부도전이 먼저 반깁니다.

 

 

부도전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에 열반에 든 스님들의 부도 입니다.

 

 

 

경봉당선관대사방광탑 慶峰堂善寬大師放光塔

광무신축춘립光武辛丑春立.1901년

 

지대석.하대좌는 망실되었고,중대석과 상대석이 일석이며 앙련을 조식하였습니다.

상부 홈에 탑신을 끼웠으며, 옥개석과 보주는 일석입니다.

 

 

춘곡당민오사리탑 春谷堂玟悟舍利塔

응화2953년 하립應化二九五三年夏立.

응화는 북방불교 표기이며, 서기 1926년 입니다.


방형,지대석, 연화문이 조식되지 않은 중대석, 상대석은 일석 입니다.

종형 탑신석 상부에는 복련을 표현하였고, 굄위에 연화보주는 일석 입니다.

 

 

월영당영진대화상방광탑 月影堂瑛瑨大和尙放光塔

대좌위에 앙련을 새긴 대좌를 두고 탑신과 연화보주를 일석으로 조성하였습니다.

 

부도뒤 마애비에 부도를 모신 제자들과 부도 조성 일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마애비

제자 혜월당정념. 혜명당법성.혜담당보협

弟子 慧月堂定念. 慧溟堂法性.慧潭堂普冾.

 

병진추립

丙辰秋立」

주변 부도 조성시기를 고려하면 병진은 1916년인 듯 합니다.

 

 

 

동삼층석탑

부도전을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이층기단, 삼층석탑으로 고려전기에 조성한 석탑으로 추정됩니다.

 

 

지대석, 하층기단 중석, 상층기단 중석 3매, 상륜부가 결실된 상태 입니다.

 

 

일견 신부재처럼 보이지만 옛부재 입니다.

 

사진 앞쪽이 하층기단 갑석입니다.

물매가 있고, 2단 굄을 조출하였으며, 중앙이 정치하지 않아 상층기단 중석은 통돌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상층기단 갑석

뒤편 탑신석 아래에 놓여 있는 부재 입니다.

처음에는 근래에 후보한 부재로 착각했습니다.

하층기단 갑석으로, 뒤집혀진 상태이며, 부연을 표현하였습니다.

 

 

뒤집혀진 상층기단 갑석

부연,절수구,음각의 추녀가 뚜렷합니다.

 

 

상층기단 중석

탱주가 모각되었고, 우주가 없는 상태입니다.

즉, 중석은 감입식으로 결구 되었었고, 4매 부재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뒤집힌 상층기단갑석.초층탑신석

 

 

탑신석

통돌,양우주를 모각하였고, 초층에 비해 상층은 체감이 급격합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는 급하고, 현수곡선이 나타나며, 상부에 2단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층급받침은 전층 4단이며, 절수구를 새겼습니다.

 

상륜은 망실되었으며 현부재는 탑재가 아닙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깊고, 현수곡선이 뚜렷하며, 2단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충분히 복원 가능한 석탑입니다.

문화재청,지자체 예산과 상관없이 범어사에서 복원하면 좋겠습니다.

 

 

 

원효암으로 향하는 길

 

 

솟을문

 

 

원효암

원효대사가 미륵암과 함께 창건한 사찰로 전합니다.

경내에는  고려전기로 추정되는 2기 석탑이  있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후의 사적은 전하지 않으며, 조선후기에 조성된 아미타불화 등으로 미루어 고려하면 조선후기에 중건 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부도가 여러 기 전합니다.

 

2006년 5월 1일

카페 회원들과 함께 초파일 등을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더불어, 무량수각 현판을 보면서 스님과 나누었던 대화도 옛글에 남아 있군요

"스님! 추사 글씨 누가 모사했나요? 

처사님! 추사가 원효암 다녀갔는지 안갔는지 어떻게 아세요?"

 

그런데

예전에 보았던 무량수각 현판과 원효암 현판이 아닙니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갔을까요?

 

 

무량수각의 목조관음보살좌상

아미타후불벽화가 있지 않았었나요?

 

2015년 복장기가 발견되어 관음보살상의 내력이 알려졌습니다.

( 이 내용은 "옛님의 숨결" 게시판  함안 백운암 글에 올렸던 내용 입니다)

 

불교신문...2015년 12월 10일

 

지난 9월2일 범어사 원효암에 모셔져 있던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 유물이 발견돼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불상 속에서는 보존상태가 완벽한 유물 30건이 쏟아져 나와 문화재 전문가들이 환호했다.

복장 속에 반드시 들어있는 경전류와 다라니 후령통 발원문이 깨끗한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발원문 속에는 누가 언제 무슨 연유로 이 불상을 조성했는지 완벽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깜짝 놀랄 정보는 불상 안에만 있지 않았다. 유물을 조사하는 문화재 관계자들에게 원효암에 오랫동안 주석하고 있는 방장 지유스님이 이 불상이 어떤 연유로 원효암에 들어왔는지를 들려주었다. 일제시대 일본인이 이 불상을 가져갔다가 고향으로 돌려달라는 꿈에 시달리다 못해 부산세관에 가져다 놓았다가 범어사로 왔다는 전설 같은 영험담이었다.

복장 속을 들여다 보기 전에 외형만으로 조선 후기 영남지역에서 유행했던 불상임을 안 전문가들은 부산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원래부터 범어사 소장품으로 추정했었다. 그런데 방장스님의 전언(傳言)에 따라 이 불상의 원 생산지가 범어사가 아님이 드러났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9월 복장유물 발견 당시 알려지면서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전문가들이 지난 3개월간 조사한 끝에 밝혀낸 더 많은 사연들이 학술세미나를 통해 공개됐다. 지난 9일 동아대 부민캠퍼스에서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 좌상과 복장유물’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범어사주지 수불스님과 국장스님 및 스님 20여명과, 동아대 권오창총장, 신도 5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연구결과는 모두 세 가지 분야에서 이뤄졌다. 불상의 형식과 복장물 중에서도 발원문의 내용 과 불상 조성 책임자인 성조스님에 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이희정(문화재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의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연구’ ,서지학적 관점에서 복장 속 전적(典籍)을 연구한 윤상기(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복장전적’, 그리고 과학적 기법을 동원하여 불상의 재질, 훼손 등을 살펴보고 보존처리 방안을 연구한 이수예(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이사장의 ‘과학조사와 보존처리 방안’이다. 세 사람의 발표에 앞서 원효암 불상 복장 유물 처리와 연구를 총괄한 정은우(동아대석당박물관) 관장이 이 불상의 총체적인 내용과 특징을 발제문 형식으로 발표했다.

 

정은우관장이 발원문 분석을 통해서 정리한 이 불상의 가치와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불상의 정확한 정체가 밝혀졌다. 정관장은 “정확한 봉안처와 제작연대, 시주자 명단 성조(性照)라는 조각승 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1674년에 제작된 불상”이라고 밝혔다. 발원문에 의하면 함양 백운산 영은사에서 조성했던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인 관음보살로 추정된다. 영은사는 폐찰 되고 삼존불 중 본존불은 영은사 옆 함양 백운암에서 봉안되어 있다. 백운암 아미타불 복장에서도 발원문이 발견됐는데 원효암 발원문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어서 두 불상이 같은데서 나왔음이 입증됐다.

두 번째는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나머지 한 불상도 어느 곳에선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못 찾는다 해도 협시불 1구가 나왔으므로 이를 토대로 나머지 불상의 복원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복장유물이 한 번도 훼손된 적도, 열어본 흔적이 없이 완벽한 보존 상태로 남아있어 서로 헤어졌던 두 불상이 400여년의 시간을 넘어 2015년 극적으로 재회한 것이다. 정 관장은 “일본으로 갔다가 현몽에 의해 범어사로 돌아온 것도 그렇고, 이리저리 채이고 함부로 다뤄지고 했었는데 어떤 연유인지 복장유물이 그대로 남아 2015년에 알려져 헤어졌던 불상을 다시 만난 것은 참으로 설명하기 힘든 영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복장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중국이 사람의 장기 모양으로 복장을 채우는 반면 한국은 다라니 경전 후렴통 등을 아래서부터 나름의 규칙을 갖고 배열하는데 원효암불상도 이 같은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 반드시 시주로 복장 유물을 채워야한다는 경전에 따라 헝겊 한 조각 시주자 이름 까지 모두 발원문에 담는 한국복장의식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고 정근우 관장은 소개했다. 스님 23명을 포함한 134명의 시주자 명단이 들어있다.

 

이희정감정위원은 주로 조각승 성조에 관해 발표했다. 그는 1646년부터 1670년대 까지 주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인 승일의 제자다. 승일은 구례 천은사 수도암 목조여래좌상과 보살상, 강진 정수사 목조여래좌상, 서울봉은사 목조아미타와 약사여래좌상, 함양 영원사 목조관음보살좌상, 김천 고방사 목조여래좌상 등 9건의 작품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승일의 계보는 목조불상과 석조 불상 계보로 나뉘는데 성조는 그중 목조불상을 이은 목조조각상이다. 원효암보살상은 신체 옷주름의 표현 등이 스승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이위원은 주장했다.

 

복장전적에 관해 발표한 윤상기교수는 원효암불상 복장 유물 속에 경전 10종 13건이 나왔다며 “묘법연화경 7종, 선문염송 1종, 육경합부 1종, 지장보살본원경 1종”이라고 밝혔다. 가장 많이 나온 <법화경> 류는 세종 4년(1422년)에 대자산 대자암에서 간행한 대자암 판부터 가장 후대인 1609년 귀신사판 까지 들어있는데 모두 같은 판에서 나중에 인쇄한 후인본(後印本)이며 책은 없이 변상도(變相圖)만 따로 떼어 봉안한 판도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수예이사장이 과학적 장치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가슴 부위에 있던 후렴통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래로 쳐졌으며 재질은 피나무로 밝혀졌다. 이는 소나무 은행나무가 압도적으로 많은 일반적인 목불상과 비교할 때 드문 사례라는 것이 이이사장의 주장이다. 개금은 한 번 밖에 하지 않았으며 목재에 배접을 하지 않고 표면에 바로 개금한 점이 특이하다고 덧붙였다. 불상 표면에 분열은 있지만 개금 색은 바래지 않았는데 현재 누런 모습을 띠고 있다. 이에대해 기조발제했던 정은우관장은 “밝은 황금색을 띠는 요즘 불상과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원래 우리 불상 개금이 원효암 불상과 같은 모습을 띤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발표에 앞서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축사에서 원효암 불상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까지 오게 된 연유를 언급하며 이 날 학술대회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권오창 총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부산 지역 문화재 연구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박부영 기자 | chisan@ibulgyo.com

 

함안 백운암 목조아미타불좌상(2016.05.21)

 

 

함안 백운암 목조아미타불좌상(2016.05.21)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6호.

방형 상호,보관은 화려하며, 봉황, 구름, 화염보주문 등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측면에는, 화염문 관대를 달았고.보발은 어깨 아래가지 흘러 내렸습니다.

보관에 화불을 표현하지 않았는데 관음보살로 모신 듯 합니다.

 

법의는 통견이며, 아미타수인의 두손은 별조로 맞추어 끼웠습니다.

하반신은 높아  안정감이 있으며, 무릎사이로 의문이 흘러 내렸습니다.

복장유물을 통해 1674년에 함안 영은사에서 조성된 보살상으로 밝혀졌습니다.

 

 

 

 

서삼층석탑

원효암 향 좌측에 있습니다.

 

동 삼층석탑에 비해 다소 늦은 시기에 조성한 고려초기 석탑으로 추정 합니다.

뒤집힌 상륜부를 바로 올렸지만 바람에 추락 위험 소지가 있어 다시 뒤집어 두었습니다.

 

 

지대석은 결실

 

하층기단

2매 부재로 결구하였고, 중석 이하는 망실. 물매가 있으며, 2단의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상층기단

중석은 2매 부재, 탱주와 양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상층기단 갑석

하층기단 갑석과 동일하며, 부연을 새겼습니다.

 

 

탑신석

통돌이며, 전층 양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는 급하고, 층급받침은 3단, 상부에 2단 굄이 있습니다.

 

 

상륜부

노반과 앙화를 일석으로 조성하였으며 뒤집혀진 상태 입니다.

 

 

상륜을 본래 보습으로 바로 올렸지만, 불안해 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뒤집힌 상륜이 더 안정감이 있습니다.

 

착시현상 이겠지요?

 

 

원효암 부도

대좌에 눈이가는 가는 부도 입니다.

 

방형 지대석

상하대석과 중대석이 일석으로 마치 고복형 모습이며, 화문을 거의 대칭으로 조식하였습니다.

 

 

상,하대석

흔치 않은 기단부 같습니다.

 

 

종형 탑신

 

팔각 옥개석

하부에는 3단 받침과. 추녀를 볼록하게 새겼습니다.

 

상륜부

보주는 본래 부재인지 불분명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부도 같습니다.

 

(출처...한국의 사찰문화재)

 

아뿔싸!

또 한 분의 부도를 놓치고 왔습니다.

답사 현장에서 이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라 크게 놀라지는 않지만, 인간인 까닭에 제가 미워집니다.

 

 

1기 부도 뵈러 다시 찾겠다고 다짐할 자신은 없지만

동편,서편 삼층석탑이 복원되었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실려오면 한걸음에 달려 가겠습니다.

 

아!

동호회 부산 답사를 도모하면 쉽게 해결 되겠군요.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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