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주시

경주...상서장. 석조부재

임병기(선과) 2018. 4. 2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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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장上書莊

통일신라 후기 당나라에서 귀국한 최치둰이 공부하던 터라고 전한다.

이곳에서 최치원은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10조()를 올렸다고 한다.

 

특히, 왕건에게 상서(上書)한 

"계림황엽곡령청송(松). 계림은 낙엽이 지고, 고려의 송악산엔 솔이 푸르다

 

즉, 신라가 망하고 개경이 흥한다" 라는 내용이다.

 

왕건에게 글을 올린 곳에서 상서장이 유래되었으며

현재는 가파른 계단위의 외삼문, 상서장, 영정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상서장

 

 

영정각

 

 

최치원 영정

 

"고려 현종 때는 최치원의 학문과 곧은 성품을 높이 평가하여 문창후()에 추봉하고 공자묘에 배향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최치원이 머물며 공부하던 곳을 임금에게 글을 올린 집이라는 뜻으로 상서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고려 말기에는 이곳에 문창후최치원상서장유허비()를 세웠다."...두산백과사전

 

 

비각

 

 

문창후최치원상서장유허비(碑)

고려시대에 세운 비는 망실된 듯하며, 현재의 비는 1874년(고종 11)년에 세로세웠다.

 

 

 

우리의 전통적인 귀부와느 차이가 있다.

 

 

 

석조부재

주초인지. 석탑재인지 모호하다.

 

 

장대석.

 

 

반월성이 지호지간이다.

신라왕실을 지켜보는 최치원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가?

 

2018.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