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용인시

용인...무봉산 금련사 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16. 7. 1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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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봉산금련사舞鳳山金蓮寺

한국민속촌에 자리한 사찰이다.

답사매니아들에게는 석탑 3기로 널리 알려진 절집이지만 발길이 잘 닿지 않는다.

오래전

금련사 방문을 위해 민속촌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폐장시간에 가까워 입장하지 않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출입할려고 했지만 청소중이던 직원들의 완강한 근무자세(9시 이후 출입)로 인해 답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

어찌 그들이 해장거리 답사의 참맛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입구 도착시간이 5시가 넘어 답사시간은 불과 1시간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달구벌 에서 다시 찾는 것은 쉽지 않음을 잘 알기에, 거금 15,000냥을 과감히 보시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민속촌 입구

우리 전통 취락구조의 구성요소인 입석과 조산이 반긴다.

금줄과 소지도 정겹고...

 

 

성황당.

금련사는, 성황당 향좌측으로 들어가 관아 뒤쪽에 위치한다.

 

 

석불입상

금련사 진입 동선 우측에 계신다.

인위적으로 3등분으로 훼손된 석불로 소발, 방형상호, 눈코입은 마모되어 희미하며, 긁은 목에는 삼도를 표현했다.

불신은 경직되었으며 의습은 도식적이다. 법의는 통견으로 보이며 수인은 시무외인,여원인의 아마타불로 생각된다.

 

 

 

석장승

흥~! 하는 표정으로 등을 돌린 두 분은 어젯밤에 다투었나 보다

 

 

부도

태고종 소속 사찰의 부부승이었나?

 

 

무봉산금련사舞鳳山金蓮寺

봉황이 춤추는 산, 흰 연꽃절, 이름으로도 그림이 그려지는 절집이다.

하지만

금련사에 대한 자료는 쉽게 찾지 못했으며, 다만 충남 유성에서 이건해 온 사찰이라는 기록만 보인다.

더구나 석탑을 비롯 문화재에 관한 글은 우리 카페 회원들의 블로그에서만 기록되어 있다.

 

 

천왕문

 

 

자금광루를 누하 진입하면 주전각인 극락보전 구역이다.

 

 

삼층석탑.

옛부재와 후보한 부재가 결합된 석탑으로 기단부, 2층 탑신, 2층 옥개석 이상 부재는 후보물로 추측된다.

 

 

지대석 위의 상하기단, 면석,갑석, 괴임은 동일한 형으로

면석에 1개 탱주, 양우주, 3단 괴임을 두었고, 갑석에는 합각을 표현하였다.

 

 

초층 탑신과 옥개석 2개는 동일석탑의 부재 같다.

탑신에는 양우주를 조출하였고, 절수구가 생략된 옥개 받침은 4단, 1단 탑신괴임을 두었고, 낙수면 물매는 깊다.

옥개석의 두렷한 현수곡선으로 미루어 11세기 후기 이후 옥개석으로 추정된다.

 

 

팔각원단형 석등

조성시기는 전하지 않으며 개인적으로는 근대작 느낌이다.

 

 

 

 

 

괘불지주

강희 정유 3월 康熙 丁酉 三月(1717년), 화주 설행化主 說行(?) 명문이 새겨져 있다.

 

 

노주석.

일제강점기에 조성 되었을까?

 

 

극락보전 옆 삼층석탑

이 무슨 행태인가!!!! 확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갑석 1기, 옥개석 2기, 탑신석 3기

지대석 위의 탑신석에는 자물쇠가 표현되어 있으며, 전층 탑신석에는 양우주가 조출되어 있다.

초층 옥개석 처럼 보이는 부재는 연화문이 새겨진 갑석이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는 급하며, 층급이 생략(?) 되었고 상단에 1단 괴임을 두었다.

2,3층 몸돌과 2층 옥개석은 비례가 맞으나 3층 옥개석은 별도 석탑 부재로 보인다.

 

따라서

석탑은 최소 3기 이상 석탑재의 조합으로 생각된다.

 

 

 

 

 

석탑은

성황당이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석탑을 잘 못 이해할까 걱정는 까닭에

사찰에서

작은 안내문이라도 세웠으면 좋겠다.

 

 

노천에 모셔진 불상



훼손된 상호와 우측 팔을 요상스럽게 보완하였다.

단언 할 수는 없지만

소발 상호, 우견편단,아미타 수인의 아미타 여래로 같다.

하반신의 모습과, 좌측 팔에 걸친 법의 등으로 미루어 조성시기는 조선시대 이전은 아닐 듯하다.

 

 

석불좌상.민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88야불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목포, 군산,인천 등지에 조성한 불상

우측에 번호, 대좌에 시주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수조

 


또 한 기의 석탑

귀꽃이 핀 지대석위의 3층 탑이다.

 


기단면석에는 양우주를 조출하였고

부연이 생략된 방형의 두터운 갑석 상부에는 1단 괴임을 두었다.

 


1,2층 탑신석에는 양우주를 모각하였고, 3층 탑신은 결실되었다.

옥개받침은 전층 3단, 낙수면 물매는 깊고, 상단에 1단 괴임을 두었다.

 


추녀의 반전이 있으며, 상륜에는 일석으로 조성된 노반과 보주가 남아 있다.

 

 


절로 들어가는 별도 진입로를 개설하지 않겠지?

괜시리

민속촌에 딸린 부속 절집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20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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