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낯설다 앞으로도 친해질 가능성은 점점 희박할 것 같다.
31년 그 마무리길 와중에도 꾼의 피는 역동치길래.
건국대 야외박물관울 잠시 들렸다.
구 서북학회 회관
서북학회는 1908년 도산 안창호, 박은식, 유동열, 이동휘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문화계몽운동을 위한 애국단체로, 1908년 1월 서우학회 및 한북흥학회가 통합하여 서북지방에서 발족하였다. <서북학회월보>를 간행하며, 계몽강연, 청년지도 등을 통하여 민중계몽운동, 민족실업진흥운동 및 항일교육구국운동 등을 전개했던 단체로, 1910년 일진회가 한일합방을 지지하고 나섰을 때 반대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동년 4월 강제로 해산되었다. 비록 옛 부터 늘 중앙집권 지배세력에 눌려 지냈던 서북인들이었지만, 서북학회는 1908년 국운이 기울어 가던 시기에 힘을 모으기위해서 서울의 한 복판인 운니동에 그 터를 잡았다.
이어 중등과정의 신교육을 가르치는 오성학교가 설립되었지만, 서북학회해산과 함께 해산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후 서북학회회관은 근·현대 대학교육의 산실로 자리 잡게 된다. 1918년 천도교가운영하던 보성전문학교가 4년 동안 이곳을 교사로 사용하였고, 보성전문학교가 이전한 후에는 서북학회의 산하교육기관이었던 협성학교와 협성실업학교교사로도 쓰였다. 이후 화신백화점의 박흥식으로부터 1939년 당시 민중병원을 운영하던 유석창에게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해방 후 건국대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다.
해방 후 서북학회회관은 한 때 한민당의 본부로 사용되다가, 1946년 5월 건국대학교의 모체가 된‘조선정치학관’이 개설되었으며, 1947년에는 단국대가 정규대학으로 발족하였고 국민대도 이곳을 거쳐 갔다. 한국전쟁 후인 1956년 건국대가 서울특별시 성동구 모진동 현 교사로 이전하면서, 본 건물은 건국대 야간부 및 법인사무실로 쓰였다. 1976년 도시계획으로 철거위험에 처하자 1977년 해체된 후, 지난 1985년 지금의 건국대 서울캠퍼스에 이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북학회회관이 떠난 자리에는 주차장이 자리잡고 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가 위치한 건물에는 건국다방 상호만이 이곳이 건국대와 인연을 맺었던 곳이라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이전 복원된 구서북학회회관은 건국대학교의 설립자의 교육이념을 기리기 위해‘상허기념관’으로 명명돼 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각종 유물과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서북학회회관은 동 시기 여느 벽돌건축과 마찬가지로 중국인 기술자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벽돌건축을 짓는 전통이 우리에게 없었기 때문에, 20세기 초까지 대부분의벽돌건축은 중국인에 의해 건축되었다. 본 건물을 짓는 데는 한성전기회사가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구서북학회회관의 돌출된 중앙현관부와 좌우 3개의 창호 배열 등 전체적인 구성은 한성전기회사사옥과 같다. 다만, 재료와 세부 표현기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구서북학회회관이 현 위치로 이전해 오면서 여러 부분에서 원형을 상실 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단부를 형성하는 지하층 외벽 재료가 바뀌었고, 벽돌을 길이방향과 마구리방향으로 번갈아 쌓아 벽체가 구조성능을 갖게 하는 영식쌓기로 지어졌을 외벽이 길이방향만으로 쌓는 미식쌓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 복원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을 당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문화재급 건축물의 복원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복원상의 실수로 문화재의 가치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음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구서북학회회관은 2003년 6월 30일 등록문화재 제53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출처/문화재청
문무인석
호랑이 해태?
건국대 박물관 오층석탑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전북(?)지역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절터에서 수집(?)하여 개인정원에 설치하였다. 해방후 급거 귀국한 탓에 미쳐 반출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후 1972년 일본인이 반출 시도가 있었으나 건국대 출신의 정삼태씨가 매입하여 1993년 모교에 기중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단층기단에 1개층 탑신과 옥개석이 결실되었고 상륜은 후보한 상태이다.
현재 지복석 위 지대석 처럼 보이는 부재는 하층기단 갑석 느낌이다. 갑석 위에는 괴임을 모각하였고 상기단 면석에는 야우주가 조출되었다. 2매석으로 결구한 상층 갑석에는 부연이 생략되었고 평평하다. 상부에 1단 탑신괴임을 두었다.
옥개 받침은 4단, 낙수면 물매는 깊지 않다. 추녀는 평면이며 처마의 반전도 급격하지 않다
탑신은 엔타시스가 뚜렷하며, 이탑의 가장 큰 특징은 전층 탑신석 4면에 안상이 새겨진 것이다. 탑신석에 4면불이 아니고 이러한 유형은 유일무이(?) 표현 양식 같다. 안내문 설명이 아니더라도 고려 중기 석탑임을 알 수 있다.
결실된 1개층 1개 옥개석을 상상해보면 상승감은 잘 표현되었을지라도 안정감은 떨어질 듯 하다. 그래서 이 석탑은 본래모습은 2층 기단이라는 생각이 깊게 든다.
2015.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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