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면 대곡리 583번지 동암사 대웅전 주존불이다. 동암사는 바드레마을을 지나 과수원을 관통하여 자리해 있다. 연세 많은 보살님 혼자서 절집을 지키고 계셨으며 사람의 정이 그리운듯 발길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동암사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안내문을 요약한다. 동암사는 정토종계열의 사찰이다. 동암사는 예안면 신남리 사찰터에서부터 시작한다.폐허가 된 사지는 건립연대를 알 수 없다. 구전에의하면 폐사후 불상은 개인 집에서 모셨으며 그후 1900년경 영양군 입암면 대천리 샘실부락 앞산에 절을 지어 봉안하였다.한국동란 와중에 사찰이 전소되어 사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후 임시로 그장소에 모시다가 송병학주지와 신도 2000명이 동암사로 옮겨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확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며 1975년 예안 신림에서 옮겨온 불상이라고 한다. 안상에 12시지신상이 조각된 대좌위에 봉안되어 있다. 나발은 굵게 묘사되어고 육계는 낮다. 눈은 민초들에게 돌려주었고 코는 시멘트로 보강하였으며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법의는 우견편단 항마촉지인이다. 통일신라 하대 작품 아닐까?
현재 이불상은 신도들에의해 미륵종불로 불려진다. 개인 종가에 모셨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종불宗佛이라는 존명은 절대로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코는 한국동란시에 경찰(북한군이라는 설명도 있다)에 의해 훼손된 것을 보강하였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아들을 점지해주는 효험불이라고 알려져 있다. 불상에 따라 예배목적은 다르겠지만 그건 학삐리들의 이바구에 불과하고 민초들에게는 아무른 의미가 없는 구분이다. 불상 무릎위에 놓인 실타래는 칠성전이 제자리겠지만 가난한 절집의 천년불상은 전지전능한 분이라고 민초들은 믿고 있다.
12지신상
불상을 찹배후 법당을 나오니 보살님이 부르시며 박카스, 바나나를 한 줄 들고 오셔서 영험있는 불상이라며 장황한 설명을 하신다. 보살님에게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그도 모르니? 라는 표정으로 나직히 말씀하신다. 아~~~ 기어코 한 방 먹는구나!!!
조용한 정적을 깨고 또 한마디 건냈다. -.보살님! 대좌만 있었으면 복원하면 보물도 될텐데 아쉽습니다. -.축대에 있는 것(대좌) 못 보았어요?
허걱!!!! 보살님 펀치에 한 방 먹고 흐느적 거리는 나에게 피니스 블로를 가한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대웅전 옆에 이렇게 버젓이 있건만...
이 불상에 대한 존명은 뭘까? 개인적인 견해로는 약사여래좌상으로 보인다. 무슨 근거로? 지대석에 새겨진 12지신은 약사여래의 권속이기 때문이다. 약합이 없어(망실?) 이론적 뒷받침이 떨어지지만 12지신상이 새겨진 부재는 대좌가 아니라 지대석이 아닐까? 법당 밖 석조부재는 복련이 핀 하대석과 앙련이 표현된 상대석이다. 결실된 중대석은 분명 팔각 원당형이었을 것이다.
우리님들은 어떻게 보이나요? 디지털안동문화대전에 간단히 몇 줄 설명을 제외하고는 , 안동시청 홈페이지, 문화재청에도 설명이 없다.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이후 행보는 그야말로 황소걸음이다.
나에 의견에 대하여 우리카페 달넘새님이 의견을 주었다. 지대석이 아니라 2단 하대석의 하기단이며, 12지신상이 아니라 사자상이라고 한다. 이제야 밝히지만 내눈에도 분명 팔각으로 보였다. 그러나 인터넷 자료에는 모두 12지신상으로 표기되어 내가 잘 못 본 것으로 이해했었다. 팔각이라면 당연히 12지신 보다는 사자상이 맞을 것이다. 그러한 예를 보자.
영주상망동 석불좌상 대좌. 2단의 하대석이 일석이다.
예천 청룡사 석불좌상 대좌
안동 마애동 비로자나불좌상 대좌.
영양 연당리 석불대좌
2013.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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