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산시

경산...초개사 석탑재

임병기(선과) 2013. 3. 28.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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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유곡동 279-5 초개사. 대구한의대학교 정문 좌측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저수지가 보이고 계속 우측길로 진행하면 산불 감시초소가 길옆에 있다.  여기서 우측 전신주에 초개사 이정표가 보이며 끝까지 진행하면 된다. 약 500m 거리지만 차량 교행이 불가능하다.

 

 

초개사 사찰명도 원효대사와 관련 있어 보인다. 즉 경산이 원효스님의 탄생지이며 나이 18세가 되어 자신이 살던 집을 절로 삼아 초개사(初開寺)라 하고 스스로 이름을 ‘이른 새벽’을 뜻하는 원효로 바꾸었다. <삼국유사>에 원효대사가 출가한 이후에, 살던 집을 절로 만들어 초개사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 초개사 이전에 신림사, 원효사로 불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원효스님의 탄생지?

 

 

극락보전에는 예불을 드리지 못했다. 중정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누구의 신도비일까? 금당 내부에는 아미타 삼존과 더불어 원효스님상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옥개석 2개. 옥개받침은 4단. 물매는 깊지 않으며 전각에 반전이 보인다. 풍탁공이 남아 있으며 상부에는 2단 탑신 괴임을 조출하였다.

 

 

 

대좌 기단도 석탑 면석이다.

 

 

'홍유후설선생(설총) 신도비'비좌도 석탑 면석이다. 설총의 신도비가 서 있는 이유는 뭘까?

1924년 경산시 남산면 하대리에 설총선생의 재실인 도동재를 세우기 이전에 경산의 유림들은 이곳 초개사에서 설총의 향사를 올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초개사 까지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재실을 이전하면서 초개사 신도비는 그대로 두고 모형 신도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기단저석과 석탑재. 달넘새님은 기단저석을 근거로 통일신라 하대의 단층석탑으로 추정하였다. 단층기단은 9세기 말 문경을 비롯 경북 북부지방에서 시작된 석탑형식이라고 한다.

 

 

초개사 석탑은 단층기단에 기단 면석에는 양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풍탁이 달린 옥개석 받침은 4단,  2단의 탑신받침을 조출한 삼층석탑이었을 것이다.

 

 

현재로 과거를 추측 할 수 없겠지만 초개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절집 자리가 아닌듯 보였다. 그렇다면 석탑재로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생각되지만 단언할 어떤 자료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초개사는 원효가 창건한 신림사지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고 전한다.

201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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