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주시

영주...백룡사 석불좌상

임병기(선과) 2010. 12. 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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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면 여륵리 탑골마을 석탑을 수소문했더니 마을 젊은분도 탑위치는 알지만 탑을 본적이 없었다고 하며 마을 노인을 소개해주었다. 최근까지도 노인의 밭둑에 부재(지대석으로 추정)가 있었는데 석산개발을 하면서 그냥 묻어버렸다고 한다.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문화재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석탑은 일제강점기에 소달구지로 실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였다. 오계리 미륵불도 동네 어르신의 말씀으로는 불두만 있었는데 발굴하니 입상불로 오래전에 도난당했다고 했다.

 

 

찜찜한 기분으로 달려간 백룡사. 우리에게는 희방사역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소백산역으로 바뀌었다. 죽령옛길. 중앙고속도 또는 중앙선 철로 여행시 산중턱에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이 백룡사이다. 백룡사 산아래 중앙고속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백룡사는 원래 죽령마루에 있는데 한국전쟁 직전 공비토벌을 위해 철거되었다가 1952년 현위치로 이건하였으며 석조여래좌상은 이전 백룡사에서 모셔왔다.

 


백룡사 석조여래좌상. 하대좌가 결실된 상대좌에 봉안되어 있다.  나발에 백호가 있고 불두는 파손된 모습이다.법의는 통견으로 양 어깨에서 무릎까지 덮었으며 승각기에는 주름과 띠매듭이 새겨져 있다. 

 

 

항마촉지 수인,  길상좌이며 불상 뒤에는 주형거신광배가 별석으로 있다. 눈과 코는 사바세계 보살님들에게 모두 내주었다.

 

광배의 두광은 연꽃으로으로, 신광에는 화불을 좌우와 중앙에 각 1구씩 배치하고 덩굴문과 화염문을 새겨넣었다. 9세기말 신라의 조각형식을 나타내는 작품으로 잘려져 있다.

 

 

소백산역 주변. 죽령옛길의 출발지이다. 문화재청에서 자료를 가져왔다. 여유를 가지고 여행하시는 분들이라면 걸어보면 좋을 것이다.

 

죽령 옛길은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서기 158년)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 ’아달라왕 5년에 죽죽이 죽령길을 개척하다 지쳐서 순사했고 고개마루에는 죽죽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고 전해지는 오랜 역사의 옛길이다.

죽령 지역은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지역으로 오랜 기간 고구려와 신라의 영토 분쟁지역이었는데, 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에 신라가 백제와 연합하여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한 기록과, 그 40년 뒤인 영양왕 1년(서기 590년)에 고구려 명장 온달(溫達)장군이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기록 등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얼마나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소백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하며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로 옛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과, 길게 늘어져 있는 수목 터널이 주변에 펼쳐지는 소백산 주요 능선 등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고 있는 명승지이다.

 

201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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