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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 기념 베트남 여행 (2)

임병기(선과) 2026. 4. 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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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다녀온 글을 옮겨 왔습니다.

 

호이안

 

"호이안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일찍이 외국 무역상들의 출입이 빈번했던 국제 항구 도시였다.

이러한 이유로 호이안은 도시 자체가 유럽과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압축시켜 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들로 가득하다.

언뜻 하노이의 구시가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할 것 같지만, 외국 무역상들의 자취를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을의 외국인 중 일본 무역상이 최초로 집단으로 거주하였고, 

이후 중국인들이 진출하여 마을에 거주했는데 아쉽게 현재 일본인의 자취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호이안에는 2,2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도자기 파편이 출토되어 일찍부터 사람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세기부터 10세기까지 참파 왕국의 중심지로서 그 위상을 떨쳤다. 인근에 미 썬 유적지가 대표적이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올드 하우스라고 부르는 지역은 쩐 푸(Tran Phu) 거리, 남쪽 응우옌 타이 혹(Nguyen Thai Hoc) 거리, 강변의 박당(Bac Dang) 거리 골목이다.

쩐 푸 거리 서쪽 끝에 있는 내원교 주변에 볼거리와 식당, 상점들이 몰려 있다."...ENJOY 베트남

 

호이안 시를 경유하여 도자기 마을로 향한다.

시내를 벗어나 길가에 전개되는 풍경은 우리네 6~70년대 고향 성주 풍경과 흡사하다.

먼지 폴폴 날리는 신작로

나란히 서 있는 미루나무와 전봇대

소달구지와 한가히 풀을 뜯고 있는 물소떼

익어가는 벼, 나락을  말리는 아낙들

 

마치 잃어버린 기억 저편의 추억이 데자뷰처럼 다가온다.

탄 하(Thanh Ha) 도자기 마을

도자기 보다는 오히려 베트남 서민들의 각종 생활용품을 만드는 질그릇을 빚고 있었다.

또한 마을에서 생산되는 벽돌 등이 호이안 지방에 건축재로 공급된다.

옹기

바로 옆에는 가마도 있다.

초벌구이 후 유약을 바른 완제품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 선착장 부근

성황당 처럼 당산목 아래에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마을의 풍농.벽사,기자 신앙을 상징하며 우리의 민속신앙과 동일한 모습이다.

특히

강가에 위치한 불상은 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무사한 항해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추앙 받는다.

우리나라의  강가에 많은 불상,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 까닭과 동일한 사례일 것이다.

투본강

강줄기를 따라 목공예 마을로 내려간다..

 

강가의 한가한 전원 풍경은 유년의 고향을 떠올리게 하고...

 

킴 봉(Kim Bong) 목공 마을

목조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와 각종 생활용품을 손으로 제작하는 마을.

베트남 목공예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작품.

용 1000마리가 새겨져 있다.

다시 강을 건너 호이안 옛시가지로 향한다..

바구니 지게 체험.

아오자이를 입었으면 참 어울리겠지요?

 

호이안 구시가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베트남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중국, 일본 색채가 강한 낮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해가 지면 호이안을 대표하는 전통 등에 불이 하나 둘 켜지면서 낮과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고 한다.


구시가지에서는 호이안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한 번에 볼 수 있으며,
특이한 점은 베트남의 주요 이동 수단인 오토바이가 없고, 씨클로를 이용해야 한다.

 

더위에 지친 여행객들에게는 화중지병, 기회가 되면 야간투어가 좋을 듯하다.

역사박물관

1653년 관인사 사원 건물이었다고 한다.

구시가지 초입에 있다.

1,2층 건물 대부분 전통생활방식,영농, 도자기, 농기구, 엣사진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내 눈에 들어 온 묘지석

 

고월 故越

현고 시 왈 성실 호공지묘 顯考 諡 曰 誠實 胡公之墓

아쉽게도 좌우 명문을 사진으로는 판독할 수 없군요

 

고월 故越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느 시대를 칭하는 것으로 추정해봅니다.

 

축문에 들어가는 현고顯考를 우리나라와 달리 묘지석에 새겼다..

성실誠實 이라는 시호를 받은 호씨성을 가진 공公(어느 품계에 오른 분을 칭한다)의 묘지석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관찰사를 지낸 분의 선정비석의 성씨 뒤에 공公을 붙히며,

현감, 고을 원의 비석에는 후侯를 성씨 뒤에 붙힌다.

 

저의 해석 능력은 여기까지 입니다.

박물관 지붕

우리와 달리 촘촘하게 기와를 조적하였으며

숫기와에 비해 암기와가 높아 골이 깊고 낙수면 경사가 급하다.

즉, 많은 강우를 빠르게 지붕에서 흘러 내리려는 구조 같다.

노란 건물이 이채롭다.

관운사.

이 사당으로 인해 가이드의 설명이 없어도 중국인 거리임을 알 수 있다.

중앙 관운장을 봉안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운장을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신성시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가?

1592년 임진 왜란 후 중국의 관운장을 모시는 사당이 경향각지에 조성되었다.

현재는 우리고향 성주를 비롯해 남원,전주,안동.서울 등에 남아 있다.

 

성주 여고 아래

관운사 관성전에 관운장을 모시고 있다.

 

기회가 되면 들려보길 바란다.

관운장의 적토마

관운장

구시가지 옛거리에는 오토바이 물결을 볼 수 없으며

씨클로가 이동 수단이다.

내원교

중국인 거리와 일본인 거리를 연결하며,

1593년 일본인 상인들이 벽돌을 쌓아 세운 다리로 지붕이 이채롭다.

다리 양쪽 중국인 거리 족에는 개 1쌍, 반대편에는 원숭이 1쌍이 있다.

그 상징성은 무엇일까?

구시가지 투어를 마치고...

저녁

한식 뷔페 대신에 현지 길거리 요리로 대체

맥주와 가져간 쇠주 칵테일로 위하여!!!!!

닭다리.닭가슴

닭발

볶음밥

 

새우 튀김

9월 1일

먼동이 떠오르고

후에로 향하는 하이번 고갯길

 

베트남어로 바다란 뜻의 ‘하이’와 구름이란 뜻의 ‘번’의 합성어라고 한다.

하이번 고개는  베트남의 남과 북을 구획하는 자연적인 경계로 기후, 사람의 기질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프랑스 사람들이 고개 마루에다 요새를 구축했는데,

후에(월맹)와  다낭(월남)을 가로 지르는 경계선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하이번 고개는 한국전쟁시에 백마고지처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파월 맹호부대의 전쟁지였다고 한다.

 

고개 너머에는 철길이 개설되어 있고, 고개 아래는 조용하고 한적한 랑코마을이 있다.

후에로 갈 때에는 이고개를 넘었지만 돌아 올 때는 터널을 통해 다낭 숙소에 도착했다.

하이번 고갯마루

프랑스인들이 설치한 구조물

랑코비치

하이번 고갯마루 방커

앞쪽 벽돌 벙커는 프랑스인이 건설, 길 건너 뒤편 시멘트 벙커는 월남전 때에 미군인 설치

뒤로 보이는 해변이 랑코비치

 

 

다낭의 미케비치

점심은

후에에서 한정식

 

 

 

 

후에로 향하는 차창에 비친 풍광

 

70년대 대한 뉘우스에 방영되었던 정글은 보이지 않고

철길, 전봇대가 줄지어 서 있는 한가로운 전원 풍경이 끝없이 전개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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