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서울...반야암 목조여래좌상, 목조관음보살좌상, 석조보살좌상

임병기(선과) 2023. 4. 27.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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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암

봉원사 사내 암자입니다.

본존인 목조석가여래좌상. 목조관음보살좌상. 석조보살좌상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목조 석가여래좌상

나발, 중간계주, 원통형 정상계주가 있습니다. 상호는 긴 편이며, 백호가 있으며, 상체는 꼿꼿한 분위기입니다. 이중착의법, 승각기는 연판문으로 매듭지었으며, 대의자락이 상체에 비해 낮은 하반신을 덮고 있습니다. 별조로 조각된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이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습니다.

강희(康熙; 1662~1722)라는 간지명만 남아 있는 조성발원문,  개금중수원문기, 분책된 묘법연화경, 후령통, 다라니 경전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본 상의 양식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진열(進悅) 유파와 유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복장 유물로 나온 〈개금중원문기(改金重修願文記)〉에 따르면 이 상은 1872년에 한봉당(漢峰堂) 창엽(瑲曄)이 수화승(首畵僧)을 맡아 역암당(櫟庵堂) 승의(勝宜)와 덕월당(德月堂) 응륜(應崙)이 함께 중수한 것이다. 창엽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불화를 제작한 화승이자 여러 불상의 제작에도 참여한 조각승이다. 창엽은 1861년에 고성 유점사 소조아미타불을 조성하였으며 1873년에는 서울 오봉산 석굴암의 지장보살상의 제작 및 나반존자상의 보수에 참여하였다. 아울러 1887년에는 수조각승으로 안성 운수암 아미타불 조성에도 참여하였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본 상은 18세기 진열 유파가 제작한 것을 1872년에 창엽의 주도로 개금 및 중수가 이루어진 것이라 추정된다.'(두산백과사전)

 

목조관음보살좌상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보발이 양쪽 어깨위까지 흘러내렸습니다. 백호, 반개한 눈, 입가에는 미소가 보입니다. 이중착의, 수평형 승각기, 별조의 두 손, 오른손에는 에는 지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1722년에 천후산 문수사에서 수조각승 진열()과 진행(), 옥총(), 일영(), 수성() 등의 금어가 조성하여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금어 진열

https://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7021

 

석조보살좌산

불석(佛石)으로 조성된 소형 불상입니다..

보관은 금색, 머리카락은 검은색, 이목구비를 적색과 녹색으로 채색하였습니다. 보관 아래로는 봅발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중착의법, 옷자락은 두 다리 위를 덮고 넓게 아래로 펼쳐져 있습니다. 두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복장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조선후기에 조성된 보살상으로 전합니다

 

 

목조나한상

 

봉원사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4683

 

오늘은

승탑과 칠층석탑을 답사하기 위해 들렸습니다.

 

석조

 

승탑

궐문의 귀꽃으로 판단하면 일제강점기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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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 탑신석 상부 복련

한 면에는 부도 주인공을 새겼으나 식별되지 않습니다

 

석등

일제강점기

 

칠층석탑

일제강점기 석탑으로 생각하고 찾았습니다.

그러나 현장 안내문에는 1959년에 조성된 석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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