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내고향 성주

성주...성산동 고분군 전시관.

임병기(선과) 2021. 5. 2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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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동 고분군

얼마전 사드 배치 문제로 뜨거웠던 성산 포대 아랫자락에 위치합니다.

중학교 까지 성주에서 다닌 저에게는 이런저런 추억이 쌓인 고향 땅입니다.

 

2007년 글을 가져왔습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833

 

성산동 고분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29600

 

오랜만에 찾은 탓에 낯설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 개관 소식을 듣고 먼저 답사하였습니다.

 

성주군청 홈페이지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상설전시실

크게 4개 파트로 기획하였습니다. 도입부에 해당하는 ‘성산동 고분군 이전 성주’는 성산동 고분군이 만들어지기 이전 시대의 성주를 알아보는 전시로, 성주의 선사시대와 원삼국시대, 삼국시대 성산가야의 흔적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성산동 고분군 발굴사’에서는 성산동 고분군 분포를 살펴보고, 성산동 고분군을 누가, 언제, 어떤 고분을 대상으로 하여, 어떻게 발굴되었고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지 발굴의 역사를 알아보는 공간입니다.

 

‘성산동 고분군 속으로’는 성산동 고분군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알리는 공간으로, 성산동 고분군 출토 유물을 종류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별티유적 속으로’에서는 성산동 고분군 중 하나인 별티유적의 1호분을 이전 복원하여 무덤 구조와 그 안에 담긴 유물들을 현장감 넘치게 보실 수 있도록 연출하였습니다.

 

성산동 고분군 이전 성주

성주에서는 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철기를 사용하면서 국가형성의 기틀을 닦고, 원삼국시대에 이르면 눈부신 발전을 이룹니다. 상언리 출토 토기와 돌칼, 백전·예산리 출토 말모양 허리띠고리, 칼과 칠칼집, 부채, 구슬 목걸이 등을 통해 성주의 성장하는 모습과 강성한 소국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암리 금동관은 초기 가야관과 관련하여 학술적 가치가 있는 유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작시기는 4세기 경으로 추정되며 이 시기 성주에 존재한 세력집단의 위세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가암리 금동관(복제품)과 함께 도굴꾼을 체포하고 금동관을 되찾았던 당시의 신문기사들과 ‘디지털 확대보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발견 당시 상황과 금동관의 현재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산동 고분군 발굴사

성산동 고분군 분포지도와 성산동 고분군 발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았습니다. 성산동 고분군의 규모와 분포범위, 발굴된 고분의 위치 등은 물론 발굴조사된 각 고분들의 특징과 대표유물을 함께 배치하여 성산동 고분군을 심도있게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발굴조사 현장 연출 및 시대별 발굴조사 영상(일제강점기와 1986년, 2019년)을 전시하여 관람객들에게 현장감을 주고, 세월에 따라 달라지는 발굴조사 기법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성산동 고분군 속으로

성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와 장신구, 농공구, 무기, 말갖춤 등을 알아보는 공간입니다.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와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는 토기, 무덤 주인의 사회적 지위와 미의식을 대변하는 장신구, 고대 생산활동의 단서를 제공해 주는 농기구와 공구, 전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무기, 효과적인 이동수단이자 재산인 말을 다루는 각종 말갖춤 등 출토 유물 각각은 고유의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무덤 속에서 발견된 이러한 유물들을 통해 고대 성주인의 생활사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별티 유작 속으로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성산동 고분군보다 다소 늦은 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별티 1호분 복원 현장입니다. 이곳에 복원된 별티 1호분은 별티유적에서 가장 큰 무덤으로,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성산동 고분군보다 다소 늦은 5세기 말에서 6세기에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앙에 위치한 별티 1-1호를 중심으로 8개의 작은 무덤들이 50여 년 동안 시간 차이를 두고 하나씩 추가로 조성되었습니다. 하나의 무덤 안에 총 9기의 돌덧널로 이루어진 별티 1호분을 통해 점차 무덤 규모가 작아지고, 껴묻거리 수준이 떨어지는 고분문화 쇠퇴기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

성주 읍내 답사 동선 수립시에  동방사지 석탑, 성산관, 복원된 성주 읍성, 성밖숲과 함께 포함 하기를 권합니다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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