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수승대(搜勝臺)
수승대.
국가지정 명승
위천면 황산리 890번지
중학교 동창 산악회원들과 동행하였으나, 빽빽이 새겨진 암각문을 세심히 살피지 못하고 주마간산으로 눈에 담았습니다.
수승대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알려진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하나로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넓은 화강암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이다. 이곳은 암반 위를 흐르는 계류와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어 2008년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수승대는 이곳이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관계로,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이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어서 수송대(愁送臺)라 불렸다고 한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이곳의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한 수 읊은 뒤부터 수승대(搜勝臺)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수승대에는 거북바위를 비롯해 요수정(樂水亭)과 관수루(觀水樓)가 아름다운 계류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주변에는 구연서원과 원각사 등이 자리하고 있어 문화경관으로서의 가치도 크다. 수승대의 하부에는 보가 설치되어 하천의 일정 구간이 못으로 형성되어 있다.
수승대에는 그 명칭이 유래된 퇴계 이황의 개명시와 관련하여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화답 시가 전한다. 거북바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거북바위에 새겨진 글 중에서 누구의 장수지대(藏修之臺), 장구지소(杖屨之所)라 한 것은 그가 이 동천의 주인임을 명확히 표시하고자 한 각자라고 한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안의 삼동(安義三洞)
화림동(花林洞) 농월정
심진동(尋眞洞) 심원정
원학동(猿鶴洞) 수승대
수승대 명칭을 낳은 퇴계 이황의 개명 시(改名詩)와 요수 신권 화답 시(和答詩)
寄題搜勝臺 (기제수승대)...退溪 李滉 (퇴계 이황. 1501~1570)
搜勝名新換 (수승면신환)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逢春景益佳 (봉춘경익가) 봄을 맞은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
遠林花欲動 (원림화욕동) 멀리 숲 속 꽃들은 피어나려 하고
陰壑雪猶埋 (유학설유매) 응달의 눈은 녹으려 하는데
未寓搜尋眼 (미우수심안) 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惟增想像悔 (유증상상회) 속으로 상상만 늘어 가누나
他年一樽酒 (타년일준주) 뒷날 한 동이 술을 마련하여
巨筆寫雲崖 (거필사운애) 커다란 붓으로 구름벼랑에 시 쓰려네
수승대봉화(搜勝臺奉和)...樂水 愼權(요수 신권. 1501~1573)
林壑皆增采 (임학개증채) 자연은 온갖 빛을 더해 가는데
臺名肇錫佳 (대명조석가) 대의 이름 아름답게 바로잡아 지어주시니
勝日樽前値 (승일준전치) 좋은 날 맞아서 술동이 앞에 두고
愁雲筆底埋 (수운필저매) 구름 같은 근심은 붓으로 묻읍시다.
深荷珍重敎 (심하진중교) 깊은 마음 귀한 가르침 보배로운데
殊絶恨望懷 (수절한망회) 서로 떨어져 그리움만 한스러우니
行塵遙莫追 (행진요막추) 세에 흔들리며 좇지 못하고
獨倚老松崖 (독의노송애) 홀로 벼랑가 늙은 소나무에 기대보네
구연서원
구라 치는 중생은 누구?
이곳은 동호회 답사를 비롯하여 5 차례 이상 답사하였습니다.
"요수(樂水) 신권(愼權)[1501~1573]을 제향 하는 서원이다. 요수 신권은 석천 임득번의 제자로 임득번의 아들인 갈천 임훈과 함께 지역에서 학문에 열중하였다. 이들은 남명 조식[1501~1572]과 동시대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남명과 함께 영남학파 중 경상 우도 학파의 학풍을 형성하였으며, 요수 신권은 학문적 성격과 생활 자세에서 영남 지역 사림의 초기 학문과 사상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1540년(중종 35)에 요수(樂水) 신권(愼權)이 서당을 세워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다. 1694년(숙종 20)에 사림에서 ‘구연서원(龜淵 書院)’으로 개칭하여, 요수(樂水) 신권(愼權)과 석곡(石谷) 성팽년(成彭年)을 제향 하였다. 1808년(순조 8)에 황고(黃皐) 신수이(愼守彛)를 추향(追享)했다. 구연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이 훼철되었으나, 강당과 문루인 관수루는 그대로 지속되었다. 강당은 1945년 실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다음 해인 1946년에 원형대로 재축한 것이다. 건물은 문루인 관수루와 강당, 사당, 관리사로 구성되어 있다. 관수루와 강당, 그리고 사당인 구연사(龜淵祠)를 직렬 배치하여 담장을 둘렀다. 관리사는 강당의 우측에 배치하여 쪽문을 통해 출입하고 있다. 뜰에는 구연서원 사적비가 있고 요수 신권을 기려서 세운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 그리고 황고 신 선생 사적비 등이 있다."(디지털 거창문화대전)
주변 문화유산
갈계리 삼층석탑
https://12977705.tistory.com/8728111
갈계리 임 씨 고가
https://12977705.tistory.com/7945284
농산리 석불입상
https://12977705.tistory.com/8724014
훗날 암각문 답사를 도모해야겠습니다.
한문에 해박한 대전의 이영규 선생을 모시고...
요수정(樂水亭)
1542년(중종 37) 정자를 건립한 뒤, 신권이 이곳에 은거하여 조숙(曺淑)[1504~1583]·이정(李桢)[1512~1571]·성팽년(成彭年)[1540~1594]과 강학하던 곳이다. 그 뒤 정자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불을 질러 소실되었다. 후에 후손들이 중건했으나 다시 홍수로 무너지자 1805년(순조 5) 구연 서원 건너편 자연 암반 위에 이건 하였다. 그 사이 수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2005년 1월 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후손 신복명의 「요수정기」를 위시하여 기문 3편, 신권의 「원운」 2편, 「퇴계 선생 수승대 화답 시」 등 모두 32편의 시가 중방에 걸려 있다. 현재 수승대 일대가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거창 요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형 건물로 부속 건물은 없고 겹처마로 된 팔작지붕의 기와집이다. 자연 암반을 활용하여 각 자연 초석 위에 12개의 기둥을 세웠다. 하부 기둥은 둥근 원목을 자연 형태 그대로 사용하여 건축미를 극대화하였고, 기둥 밖의 네 모퉁이에 활주를 세워 하중을 분산시켰다. 배면에 1칸의 방을 들인 것이 특징이며, 방은 판방으로 구성하여 배면을 제외한 3면에 문을 냈다. 마루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고, 마루 끝에는 계자 난간을 둘러 안전과 미적 형상을 돋보이게 하였다. 정자 뒤편에 시인 박목월 선생이 쓴 ‘요수 선생을 기리는 글’을 새긴 작은 비석이 있다.
(출처. 디지털거창문화대전)
수승대에서 고운 님들과 낮술 한 잔 하고
거창 창포원으로 향했습니다
거창 창포원
"거창창포원은 남상면 월평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1988년도 합천댐을 조성할 때 수몰지역에 해당된 곳으로, 그동안 농민들이 벼를 재배해 왔던 곳입니다. 거창군에서는 국가하천인 황강의 수변경관과 어울리는 생태정원을 조성하여 영농오염원을 줄여하천수질도 보호하고, 관광자원화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거창창포원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창포는 수질을 정화시키는 식물로 단옷날 머리를 감는 전통적인 풍속과 실용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꽃창포는 '창포에 비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과 같이 자태가 곱고매우 아름다운 꽃입니다.
현재 거창창포원은 공원면적이 424,164㎡로 대규모 수변생태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봄에는 100만 본 이상 식재된 꽃창포가 아름답게 군락을 이루고, 여름철은 연꽃, 수련, 수국을 테마로, 가을은 국화, 단풍을, 겨울에는 열대식물원과 유수지와 습지 주변에 억새, 갈대를 테마로 4계 절색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거창창포원에서는 창포원이 국내 제일의 힐링 관광명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거창군청)
매월 진행되는 산행 및 여행
6월에 친구들과 다녀온 거창 여행의 두서없는 기록입니다.
202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