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추자도 모진이 해수욕장
추자도에 있는 최영 사당 금표 답사를 위해 여러 번 도모하였으나 4전 5기 만에 추자도에 입도하였습니다. 대구에서. KJ 산악회 주최로 02:30분 출발 아침에 완도항에서 08시 추자행 산타모니카호 승선하여 약 45분 상추자도 추자항에 닿았습니다.
추자도
추자면이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에 대해서는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서기 662년 신라의 문무왕 때와 백제시대에 탐라가 예속되어 조공이 있었던 점을 미뤄 제주에서 육지를 왕래하던 선박들이 해상의 중간지점인 추자도를 후풍지점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조선조 성종때에 편술한 〈신 증동국여지승람〉제38권 〈제주목〉편에 추자도 부분이 나오는 데 거기에 추자는 제주목의 북쪽 바다에 있는 주위가 30리이며 수참(水站)의 옛터가 있다고 했다.
이로 미뤄 이 섬에는 그 시대 이전에 사람이 살았던 것을 알 수가 있으며 같은 기록에는 고려 원종(元宗) 11년 三別抄가 진도를 거쳐 탐라로 돌아온 후 고려장수 김방경과 몽고의 흔도(炘都)가 이들을 치러올 때(1273년) 추자도에 후풍을 했는데 후에 탐라인들의 그 공을 생각하여 이 섬의 이름을 후풍도라고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조선조 인조 때 사람 김상헌(1570~1652)이 어사의 명을 띠고 주로 제주지방을 순행하면서 쓴 기행문인 〈남사록〉에는 김상헌이 제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며 바람을 만나 추자도의 당포(堂浦) (대서리포구)에서 3일간이나 후풍 했던 기록 및 추자도 지명에 대해 자세히 적어놓고 있다.
추자근해의 풍부한 어장과 바다낚시의 천국으로 주산업의 수산업이며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유인도 4개소, 무인도 38개소로 제주의 다도해로 불린다. 2024년 12월31일 기준 6개리 44개 반 9개 자연마을이 있으며, 957세대 1,554명(남: 854명, 여: 700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추자면 사무소 홈)
추자도 대서리
추자도의 중심으로 추자면사무소를 비롯 주요 기관, 학교가 이곳에 있습니다.
오늘 올레길 18-1구간으로 상추자도에서 마을버스로 출발하여 신양항에도 도착 후 도보로 모진이 해수욕장-황경한 묘-예초리 포구-엄바위 장승-추자교-추자 등대-나바론 길-최영장군 사당-처사각-순효각을 답사하였습니다. 그래도 17:35분에 완도로 출발하는 배편에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추자항에서 신양항까지는 마을버스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신양리에서 마을버스 하차하여
일행은 돈대산으로 향하였지만, 나 홀로 모진이 해수욕장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신기루 같습니다.
모진이 해수욕장
몽돌해변이라고 했는데...
" 추자면 신양1리 마을의 동쪽에 펼쳐진 몽돌해안(역빈)이다.
역빈(礫濱 shingle beach)은 파랑의 작용이 우세한 해안에 발달하는 퇴적체로서 자갈이 많이 퇴적되어 있는 해안으로 역진해안이라고도 하며, 모래가 주로 쌓여 있는 사빈에 비하여 투수성이 강하다. 해안에 자갈이 퇴적되어 형성된 역빈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남해안에서 잘 나타난다.
자갈의 공급처는 대부분 주변 산지이며, 형성 시기에 따라 자갈의 크기와 원마도(圓磨度=암석의 풍화 물질인 암편은 하천 등을 통해 운반되는 과정에서 모서리가 둥글게 침식되는데, 그 둥근 정도를 원마도라고 한다)에 차이가 나타나는데, 대체로 오래전에 형성된 것일수록 자갈의 크기가 작고 원마도가 양호한(높은) 편이다.
바닷물이 들고 날 때마다 자갈이 구르는 소리가 아름답다.
모진이 해안은 길이 약 200m 정도이며 폭은 20~40m이다.(출처 : 제주환경일보(http://www.newsje.com)
황경한 묘 가는 길에서 바라본 모진이 해수욕장
2025.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