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화성시

화성...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25. 4. 19.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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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 고구려의 침략을 불도(佛道)의 힘으로 막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봉황새가 절 주위의 숲에 와서 앉았으므로 봉림사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1621년(광해군 13) 안모(安暮)·자현(慈賢)이 대웅전·망양루(望洋樓)·봉향각·범종각 등을 중수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중건이 있었다. 1884년(고종 21) 무렵에도 중건하였으며, 1979년에 아미타여래상의 복장(腹藏)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근래에 세웠다. 1998년 삼성각을 건립하고, 1992년에는 요사를 개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봉향각(奉香閣)·망양루·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이며, 내부에는 1989년 보물로 지정된 높이 87㎝의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1978년 이 불상을 개금 할 때 복장품에서 지정연간(至正年間, 1341∼1367)의 묵기(墨記)가 나와 고려 말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전적 일괄은 1991년 보물로 지정되어 현재 용주사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극락전 불단

지장보살.아미타여래좌상.관음보살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보물

1362년 이전 봉안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고개를 약간 숙이고 오른손은 가슴 부위로 올리고 왼손은 수평으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습을 하고 결가부좌로 앉아 있다. 안정적인 신체비례와 당당한 체구, 머리와 경계가 없는 낮은 육계, 뚜렷한 이목구비, 양감 있는 가슴과 배가 특징이다. 얼굴은 이마가 넓고 턱 부분이 둥글고 갸름한 편이며 반개한 눈에 오뚝한 콧날, 외곽선이 뚜렷한 입술로 부드러우면서도 위엄 있는 표정이다.

착의법은 안에 편삼을 입고 그 위에 변형편단우견이다. 옷주름은 사실적인데 특히 대의가 왼쪽 어깨로 넘어가면서 형성된 좁은 잔주름은 이 불상의 특징으로 특히 13세기 여래상에 나타나는 표현이다. 또한 무릎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자락과 왼쪽 무릎 위로 대의자락이 흘러내리면서 나뭇잎처럼 접힌 옷자락도 특징적이다.

이 여래좌상에 보이는 얼굴의 형태라든지 굴곡진 가슴, 매듭이 없는 승각기 그리고 옷주름 등은 1274년 중수된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2010년 지정)과 비슷하다. 복장유물 가운데 소자금강반야바라밀경(小字金剛般若波羅密經)은 권말에 무의자혜심(無衣子慧諶)이 발문을 적었다. 혜심은 조계산 수선사의 2세 국사로서 이 불상의 제작 시기 추정에 참고가 된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일부 수정)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978년 개금불사 과정에서 사리병, 전적류, 섬유류, 곡물류, 구슬 등의 복장유물과 함께 조성개금기가 발견되었습니다. 개금기에 의하면  불상의 존명은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이며, 1362년(공민왕 11)과 1583년(선조 16) 개금 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즉 1362년에 조성된 불상이며, 함께 발견된 복장유물 중 전적류 8종 17점은 1991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2025.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