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달성군

대구...현풍 수철원교비

임병기(선과) 2018. 9. 2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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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청.

달성군에 산포하던 선정비.공덕비 등등을 수습하여 놓았다.

 

 

 

'수철원교 비명(水鐵院橋碑銘)

수철원교(水鐵院橋)는 현풍현의 서쪽에 있는 다리로 1706년(숙종 32)에 중수되었다가, 1736년(영조 12) 다리가 붕괴되어 1760년(영조 36)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포산지(苞山誌)』에 “풍제원교는 현 서쪽 1리에 있다. 지금은 수철원교라 부른다[豊濟院橋縣西一里今名水鐵院橋]”, 『교남지(嶠南誌)』에 “원교는 군의 남쪽에 있다. 예전에 수철교라 불렀다.[院橋在郡南舊稱水鐵橋]”라고 기록되어 있다.

 

水鐵院橋碑銘

縣之西橋有二命焉曰豊濟曰水鐵也豊濟之壞補已記前碑水鐵之興廢若待季所粤丙戌敦寧趙公道輔來莅玆縣憫橋之圯病民之涉捐廩而修之丙辰之年水閼橋壞代之以木隨漂旋改爲弊日滋逮夫丙子金公光泰莅任五載俱興百廢又營此橋捐俸補資勸文鳩材猗歟巡相趙公曮卽敦寧公之孫也追感舊蹟念切繼述貸千緍銅給四寺僧始於庚辰之春材倕咸齊邑運不幸金公棄世民哀停役越四月孟夏申公㫸適新莅勅吏復董斷手不日嗟呼幾難丙戌之重修幸有庚辰之復興興廢有數祖孫相刱理非偶然是誰之爲巡相之賜也賢侯之功也銘曰 瑟山峨峨 焂成長虹 偉三公蹟 記功詔後 龜川身身 宛若游龍 利萬民涉 刻此大石

 

崇禎紀元後三辛巳仲秋上浣書

 

"현풍현의 서쪽에 다리가 둘이 있으니 풍제교와 수철교이다. 풍제교가 무너졌다가 다시 보수된 것은 이미 앞의 비석에 기록하였는데, 수철교의 흥폐에 관한 것은 마치 끝자리를 기다린 것 같다. 지난 병술년[1706년]에 돈녕 조도보 공이 이 고을에 현감으로 부임하여, 다리가 무너져서 백성들이 건너다니기가 불편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자신의 녹봉을 떼어 그것을 수리하였다. 병진년[1736년]에 물이 막혀 다리가 붕괴되자 나무로 다리를 대신하였는데, 그마저도 물결에 휩쓸려 뒤틀려서 폐단이 날로 불어났다. 병자년[1756년]이 되어 김광태 공이 현감으로 부임하여 5년 동안 다스리면서 온갖 무너진 것을 모두 일으켜 세웠다. 또, 이 다리도 건설하였는데 봉급을 떼어 자금에 보태고 권선문(勸善文)을 돌려 재목을 모았으니, 아! 훌륭하도다. 이때의 관찰사 조엄 공은 바로 돈녕공의 손자이다.

조부의 옛 자취를 더듬어 감격하고 선조의 뜻을 이어 계승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천 냥의 동전을 대출하여 네 곳 절의 승려들에게 주어서 경진년[1760년] 봄에 일을 시작하였다. 재목과 기술자가 모두 갖추어졌으나 고을의 운수가 불행하여 김 공이 세상을 떠나니 백성들이 슬퍼하며 공사를 중지하였다. 그 후 4월 맹하(孟夏)에 신첩 공이 마침 새로 부임하여 아전들을 단속하고 다시 공사를 독려하여 며칠만에 일을 마무리하였으니, 아!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는가? 병술년에 중수하고 다행히 경진년에 다시 세웠으니 흥폐에도 운수가 있고 조손(祖孫)이 서로 창건하였으니, 우연히 된 일이 아니로다. 이 일을 한 분이 누구던가? 관찰사 조엄 공이 베푸신 것이요, 어진 현감들의 공로로다. 이에 명문을 짓는다.

 

비슬산은 높고 높으며 구천은 길고 길도다

홀연히 무지개 같은 다리 완성되니 완연히 꿈틀대는 용과 같네

위대한 세 분의 업적으로 만백성이 건너다니기에 편리하도다

 

 공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알리려고 여기 큰 돌에 이 일을 새기노라.

 

숭정 기원 후 세 번째 신사년[1761년] 중추 상완 씀

 

 

 

 

수철원교 비

사진 좌측 두번째 규수형 비석이다.

 

위의 수철원교비명 해석(디지털달성문화대전에서 발췌)에 의하면 흥미로운 몇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풍제원. 즉 역원 부근에 건설된 다리이고

2.고구마를 일본에서 가져온 조엄이 경살도 관찰사이었으며, 그의 조부가 현풍현감으로 재직시에 1차로 다리 보수를 하였다.

즉 문장에 언급되었듯이 할아버지와 손자가 월천공덕을 지었다.

3.수철원교는 인근 4개 사찰(四寺僧)의 승려들이 주도하여 건설하였다.

4.숙성장홍 焂成長虹 명문으로 미루어  수철원교는 홍예교 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4항으로 미루어 수철원교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없을까?

 

 

현풍 유가사 척진교

홍예형 나무 다리를 철거하고 1916년 일본인 기술자가 건설 후 만세교로 다리이름을 바꾸었다.

 

 

유가사 척진교비陟眞橋碑

척진교비에 의하면 1916년 석교를 개설하기 이전에는 홍예 모양의 나무다리로 1747년(영조 23)

해백.설담.덕초.노덕스님의 주도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척진교 공사에 참여하였던 스님들이 수철원교 복구 공사에 주도적인 역활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8.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