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 천룡사지 부도
(2013.03.31)
천룡사지天龍寺址 "창건시기는 알 수 없으나 삼국유사 천룡사조에 사찰의 위치와 사명유래, 전설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천룡사는 고사高寺로도 불렸으며, 파괴된 사찰을 최재언崔齊顔이 중수하였다는 1040년(重熙 9, 고려 정종 6)의 문건이 필사되어 있다. 그 내용에 의하면 사찰의 법당, 회랑, 요사채, 부엌, 창고 등을 건립하였고, 석불상과 소조불상을 안치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규보의 우거천룡사유작을 비롯, 조선 전기의 신동국여지승람에도 천룡사의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에는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들려 시문을 남겼으며, 세조 4년에 제작된 대장경을 보관한 49개의 사찰 중 한 곳이고, 『묘법연화경(1688)의 판전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범우고와 『여지도서에는 사찰이 고위산에 유존한다고 하였으나 경상도읍지(1832)에는 금폐“今廢”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동경잡기東京雜記와 영남읍지嶺南邑誌에는 사찰이 재고위산“在高位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후 1933년 동경통지에는 천룡사지“天龍寺址”로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문헌을 정리하면 천룡사는 통일신라~1040년 사이에 폐사 또는 크게 훼손되었다가 고려시대에 이르러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려~조선시대의 많은 문인들이 방문하는 명승지로서 조선시대에는 대장경을 보관하고 경전이 제작될 정도의 사세를 지녔으며, 19세기에는 점차 쇠퇴하다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일제강점기 자료에는 천룡사지가 100여년 전에 폐사되었다고 한다."...한국의 사지에서 발췌
*부도 답사 후 녹원정사에서 보리밥을 먹고 천룡사지 석탑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미처 점심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에 탑을 잊고 하산하였다. 갈수록 증세가 심해간다.위 사진은 2013년 답사에서 촬영하였다
부도 부도는 사진의 우측 하단 연못가에 1기, 카페 주소가 새겨진 부분, 즉 연못 기슭에 1기가 유존 한다.
부도(1) 연못가에 위치
탑신과 연봉형 보주가 일석의 석조선후기 석종형 부도로, 탑신 상부에 둥글게 보주 받침을 둘렀고. 하부는 매몰되어 확인이 어렵다 탑신에 경선당웅대사“慶禪堂雄大師” 당호를 새겼다.
대사의 법명이 웅雄으로, 외자는 처음 접한다.
마모가 심하다.
부도(2) 천룡사지 아래 연못가 기슭에 위치 부도(1)가 비슷하나 보주가 둥글다.
부도(1)가 비슷하나 보주가 둥글다. 조선후기 종형 부도로, 하부는 매몰되어 있다.
한국의 사지에는 "탑신에 월화당대사月華堂知圓大師 당호가 음각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마모되어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2013년 3월 31일 사진)
부도전(2013.03.31)
천룡사지 석탑 뒤편 부도전으로 알려진 민묘 주변에는 여러기의 대좌가 산포하고 있다. 연못가 2기 부도의 원위치로 추정하고 있다.
(2013.03.31)
(2013.03.31)
2013,03,31 화전 놀이, 모두 11명이 었구나.
5년전 함께 했던 님들이 보고픈 날이다.
2018.05.04
*사족 많은 자료에 부도 2기의 당호가 서로 바뀐 상태로 실려 있다. 현장 답사와 명문 확인 없이 특정인의 글을 마구잡이로 퍼 온 결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