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사천시
사천...대방진굴항
임병기(선과)
2016. 7. 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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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항掘港 바다에서 굴항을 바라보면 숲이 가로막고, 지형이 활처럼 굽어 항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굴항掘港으로 불려지는 듯하다.고려시대에는 빈번하게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굴항 부근에 구라량영仇羅粱營을 설치하였고, 조선 세종 재위시구라량이 고성 사도蛇島로 옮겨감에 따라 폐영廢營 되어 소규모의 선진船鎭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대방진大芳鎭이 있었으며,충무공 이순신이 수군 기지로 이용하였으며, 장군은 병선에 굴이 달라붙지 않도록 굴항을 민물로 채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순조(1801∼1834년) 때 진주목 관하의 남해 창선도의 적량첨사赤梁僉使와의 군사연락과 왜구 방비를 위해 대방선진大芳船鎭을 설치하였다. 굴항 축조공사에는 진주관아 73개의 면민이 동원되어 1820년경에 완공하였으며, 굴항 북편에는 수군장이 거처하는 동헌과 많은 관사들이 있어 수군촌을 이루었고, 잡곡을 포함한 환향미還鄕米 2만여 섬을 저장한 선진창船鎭倉도 있었다. 또한 굴항이 축조된 다음에는 2척의 전함과 300명의 수군병력이 상주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현재는 새로이 복원된 모습이다.
소나무,팽나무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2016.06.11 |